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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호사 대신 사무장이 피해자 상담ㆍ합의까지 종용…성폭력 피해자 2번 울린다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1. 한 성폭력상담소에서 근무하는 A 씨는 최근 성폭력 피해자 국선 변호인의 사무장에게 황당한 부탁을 받았다. 상담소가 나서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합의를 설득해달라는 것.  A 씨는 사무장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이후 사무장이 가해자 부모에게 상담소 연락처를 알려줘 가해자 부모가 상담소를 찾아오는 당혹스러운 일도 벌어졌다. A 씨는 “사실상 사건 진행 내내 상담과 합의를 맡은 이는 변호사가 아닌 사무장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 지난해 성폭력 피해자 B 씨는 재판과정 중 자신을 상담해주던 ‘변호사’가 실제 변호사가 아닌 사무장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2심 재판에서 패소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변호사가 아닌 사무장에게 상담을 받았다는 이유로 재판에 진 것은 아니었지만 황당함은 가시지 않았다. 당시 B 씨는 “‘OO법률사무소 OOO’이라며 직함없는 명함을 주기에 당연히 변호사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성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가 일부 몰지각한 변호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허점 탓에 변호사 대신 사무장이 상담에 나서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피해자의 법률조력인으로 지정된 국선 변호사는 법률 상담은 물론 소송행위에 대한 포괄적 대리권을 갖고 피해자 및 피해자 법정대리인을 돕는다. 이 대가로 국선변호사는 법무부로부터 보수를 지급 받는다. 사건 종결 이후 수행실적에 따라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200만원까지 나온다. 상담일지, 변호인 의견서, 수사 참여 등이 보수 산정의 기준이 된다.

문제는 수사기관 등에서 확인서가 나오는 활동 외에 상담 등 공식 확인이 불분명한 활동들이다.

서울의 한 해바라기센터 관계자는 “어떤 변호사는 1시간 밖에 진행하지 않은 상담을 2시간으로 부풀려 상담일지를 작성하기도 한다”고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피해자 상담은 기본 보수가 20만원이다. 최소 2시간 이상 해야하며 횟수와 관계없이 이 시간만 채우면 20만원이 지급된다.

한 일선 변호사는 “이를 악용해 사무장이 대신 상담한 뒤 상담일지를 작성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실제로 일부 변호사들은 단순한 사건의 경우 사무장에게 직접 상담이나 소장 작성을 시키기도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사무장이 단순히 상담을 하는 것까지 잘못됐다고 하긴 어렵지만 기왕 제도 취지에 맞게 운영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의견서 제출시 건당 5만~10만원을 받는 만큼 내용의 질과 무관하게 무조건 많이 작성하고 보는 변호사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법무부는 이와 관련, “변호사들이 피해자와의 상담을 전화로 진행한 경우엔 전화 내역 캡쳐본을 제출하라고 한다”며 “일반 국선 변호사 제도도 좀 더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전국에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인 15명을 도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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