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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銀제련기술과 금융 파생상품
16세기 한국이 세계경제의 주역이 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 1503년 광해군 시절, 두 조선인이 획기적인 은(銀) 제련법을 발견했다. 실록은 발명자를 김감불(金甘佛)과 김검동(金儉同)이라고 적고 있지만, 아마 이름 없는 미천한 신분의 ‘까불이’와 ‘검둥이’였을 것이다. 이들은 화로에 재와 은, 납 광석을 얹고 고열을 가하면 은이 분리된다는 ‘회취법’이란 제련법을 고안해냈다. 이로써 대량의 순은 추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조정은 이 기술을 무시했다. 은은 사치품이며 중국이 조공으로 빼앗아 갈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이와미 은광이 발견됐다. 그러나 일본은 제련기술이 없어 한국에 원석을 가져와 일부를 제련해 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일본이 푸대접받던 조선의 ‘회취법’ 기술자를 데려 갔다. 일본 기록에 1533년 이와미 은광은 두 명의 한반도 기술자를 불러와 은 생산을 비약적으로 늘렸다고 기술하고 있다.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스페인 정부의 지원 하에 인도로 떠났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남미에 거대한 은광이 발견됨으로써 대교역의 시대가 시작됐다. 당시 교역에 필수적인 화폐가 바로 은이었다. 이때 포르투갈 상인들이 주목한 것은 일본의 은이었다. 이와미 은광은 세계 은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산지가 됐다. 일본은 이 은을 바탕으로 서역의 기술과 문물을 들여와 경제를 부흥시켰고, 이때 들여온 조총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은 제련기술은 우리가 먼저였다. 우리가 이 기술을 제대로 활용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16세기 우리나라가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서역의 주된 교역국으로 먼저 강국의 문턱에 들어섰을 것이다.

이 역사적 교훈은 현재도 되풀이될 수 있다. 지금 세계의 자본시장은 국경을 넘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파생상품 분야에서 몇 년 전까지 KOSPI200 옵션과 선물상품이 각각 세계 1위, 3위를 달렸다. 그런데 개인의 투기성향이 강하고 많은 이익을 외국인들이 가져간다는 이유로 이 상품들에 대한 거래억제 정책이 계속되면서 거래량이 급감했다.

파생상품은 글로벌 금융 비즈니스의 대세가 됐다. 이 상품은 철저히 국제화된 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규제가 많으면 투자자들은 곧 다른 나라 시장으로 옮겨간다. 뒤늦게 선물시장을 개장한 중국은 십 여년 쌓아온 한국거래소의 실적을 한 번에 역전시킬 호기로 생각하고 있다. 중국의 CSI300 선물상품이 시작한지 불과 4년만에 거래량에서 우리를 능가해 버렸다. 또 아시아 최대 거래소인 도쿄거래소는 오사카거래소를 합병하고 5년내 파생시장을 두 배로 키운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중이다.

이제라도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봐야 한다. 과거 조선이 사치와 중국에의 은 유출을 걱정해 은 생산을 규제한 우를 범한 것처럼, 투기와 외국인에의 국부 유출을 걱정해 파생상품시장을 약화시키는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진정 금융 강국을 원한다면 더 늦기 전에 파생상품 시장 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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