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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청 딸기 농가, 한국의 ‘브레따뉴’를 꿈꾸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겨울 딸기가 본격적으로 시중에 풀리기 시작한 지난달 28일. 국내 딸기 주산지 중 하나인 경남 산청군의 농업조합법인 조이팜의 딸기 공동선별장에서는 20여 명의 선별사들이 딸기의 무게를 달고 크기를 재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조이팜 소속 농가들의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된 딸기는 모두 이곳에 모여 분류된 뒤 시중에 풀린다.

“딸기의 크기와 무게, 모양에 따라 케이크 장식용, 샐러드 재료용, 잼과 같은 가공용 등 쓰이는 용도가 다르거든요. 딸기를 이렇게 공동선별하는 곳은 산청에서 이곳이 유일합니다.” 이부권(44) 조이팜 대표는 말했다.

산청 지역에서 규모가 큰 농업조합법인 중 하나로 꼽히는 조이팜은 지난 2011년 산청군 내 11개 딸기 농가가 의기투합해 만들어졌다. 당시 CJ푸드빌의 뚜레쥬르 케이크 장식용으로 적합한 딸기 상품을 수소문하던 CJ프레시웨이는 농가에 딸기를 꾸준히 수매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에 힘입어 농민들도 법인으로 조직화됐다. 우리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히는 영세성을 극복하게 된 것. 이는 CJ프레시웨이로서는 질좋은 상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농가로서는 어디다 어떻게 팔아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없이 농사에만 매진할 수 있는 공유가치경영(CSVㆍCreating Shared Value)의 대표 사례이기도 했다.

농가가 뭉치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은 공동선별로 인해 제품을 표준화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구매하는 입장에서는 일일이 살펴보지 않아도 균일한 품질의 딸기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에 개별 농가별로 수확한 딸기를 선별했을 때는 기준이 들쭉날쭉하고 제품의 질도 담보할 수 없어 시장의 신뢰를 깎아먹는 요인이 됐다. 이 대표는 “공정하게 선별하기 위해 농가와는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 선별사들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공동선별은 들쭉날쭉한 딸기의 품질을 표준화함으로써 시장에 신뢰를 안겨주었다. 지난달 28일 조이팜 딸기 공동선별장에서 선별사들이 딸기를 크기와 무게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종래에는 상품화할 수 없어서 버려야 했던 딸기들을 팔 수 있게 됐다는 점도 큰 변화다. 조이팜은 10~16g 사이의 딸기를 장식용으로 우선적으로 골라낸 뒤, 그보다 큰 딸기들은 싱가포르, 홍콩 등 해외로 수출하고, 10g 미만의 딸기는 샐러드 재료용으로 납품하고 있다. 그러고도 남은 딸기는 잼이나 퓌레 등의 가공용 재료로 쓰인다. 버릴 게 없는 셈이다. 이 대표는 “가공용이 생기기 이전에는 딸기를 시장에 가져가봐야 수지가 안맞아 4월말까지만 수확하고 한 해 농사를 접었는데, 가공용으로 상품화가 되니까 6월까지도 수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농가의 소득도 높아지게 됐다. 조이팜의 매출은 2011년 11억원에서 올해 목표 78억원으로, 3년만에 7배로 뛰었다. 소속 농가들은 1개 농가가 평균 10개 동의 비닐하우스를 가지고 있는데, 1개 동의 평년 조수익(필요 경비를 빼지 않은 수입)은 1500만원에 달한다. CJ프레시웨이 상품개발본부 임희택 부장은 “딸기는 국내 시설원예작물 가운데 농가소득이 가장 높은 작물인데, 조이팜 농가들의 수익은 딸기 농가들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에 속한다”고 말했다.

개별 농가에서는 쉽게 결정하기 힘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가능해졌다. 가령 경북농업기술원이 개발해 2012년부터 보급하고 있는 딸기 신품종 ‘산타’를 시험재배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산타는 맛과 식감이 좋고 쉽게 짓물러지지 않는 유통성 덕분에 수출용으로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조이팜 역시 올해 시험재배 성과를 본 뒤 재배면적을 늘릴 계획이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법인의 덩치도 점점 불어나고 있다. 조이팜이 시작할 당시 정회원 농가는 11개였지만, 현재는 두 배가 넘는 29개로 늘어났다. 이밖에 정회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준회원 농가도 40여개가 있다. 정회원 수를 제한해 이권을 좀 더 누리려는 기존 소속 농가와 새롭게 회원이 되려는 준회원 농가 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도 있을 정도로 매력있는 모델이 된 것이다. 

경북 산청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겨울 딸기 주산지다. 지난달 28일 이부권(사진 왼쪽) 조이팜 대표가 소속 농가를 방문해 딸기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고용 효과도 톡톡해 선별사, 내근직을 포함해 36명의 직원이 고용돼 있다. 인근의 진주 지역에서까지 출근을 할 정도다. 농가가 뭉치니 소득이 늘고, 일자리도 만들어 내면서 지역 경제에 선순환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곳곳에 비효율이 존재할 정도로 아직은 소규모다. 가령 농장에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의 경우 한 대만으로도 5만㎡(1만5000평)를 담당하는데 충분하지만, 현재는 그 한 대가 고작 6600㎡(2000평)에 쓰이고 있다. 현재의 규모는 효율적 영농을 하기 위해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든다.

조이팜은 이 때문에 법인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설을 직영 단지화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2018년까지 16만5000㎡(5만평) 정도의 농지를 확보해 법인이 직접 딸기를 재배하겠다는 것이다. 재배 인력은 귀농에 관심이 있지만 딸기 하우스를 직접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 이들을 끌어모을 생각이다. 법인이 시설을 마련해놓고 재배 인력 교육까지 시킨 뒤 농사만 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부권 대표는 “현재의 귀농은 자신의 연고가 있었던 지역으로만 돌아가는 것이라 한계가 있다”며 “직영 단지화가 되면 이곳에 연고가 없는 이도 불러모을 수 있어 지역 인구를 늘릴 수 있고, 교육ㆍ관광사업도 가능해진다”고 자신의 꿈을 풀었다.

임희택 부장은 “산지 조직화의 대표사례인 프랑스의 브레따뉴 협동조합은 프랑스 10대 채소 시장의 50%를 장악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며 “우리나라도 생산자 조직이 선제적으로 집단화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 브레따뉴 채소협동조합연합 - 브레따뉴 지방은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해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채소 주산지다. 이곳의 농가들은 중간 유통 상인들의 횡포에 대응하기 위해 1950년대부터 조직화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협동조합 형태를 이뤄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2013년 현재 230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품질과 물량 면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프랑스 소비자 대부분이 이 지역의공동 브랜드인 ‘프린스 데 브레땅(PRINCE de BRETAGNE) 알고 있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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