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풍납토성 동쪽 성벽은 기원후 3세기 중후반에 착공해 4세기 중반 이전에 처음 완공됐으며 이후 4세기 말과 5세기 중반 두 차례에 걸쳐 증축되면서 규모가 확대됐다. 현재 풍납토성은 정비를 거쳐 지하 3m, 지상 약 5m 내외가 남겨졌는데, 이를 컴퓨터 모형화한 결과 첫 건축 당시의 높이는 10.8m였고, 두 차례의 증축을 거치면서 최대 13.3m까지 확대됐음이 새로 드러났다. 이는 한강변에 아파트 5층 높이까지 흙을 쌓아 총 3.5㎞ 둘레의 거대한 성벽을 완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이같은 사실은 문화재청이 지난 2011년 시작된 동쪽 성벽 발굴조사 이후 축조 연대, 건설 공법, 규모, 투입 인력 등을 밝히기 위해 고고학, 영상공학, 지구물리학, 지리학, 측량학, 토목공학, 토양학, 핵물리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진행한학제간 융합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복원된 풍납토성의 제원(체적 70만4200㎥)과 중국 당나라 ‘통전’(通典, 801년)에 기록된 인부 1인당 하루 작업량을 견주었을 때 풍납토성의 건설에는 연인원 138만 명 이상이 투입됐다고 추정했다.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에 건설된 도성의 중요시설로, 그동안 축조 연대와 성격 등은 한국 고고학과 고대사 연구의 중요 쟁점 중 하나로 꼽혀왔다. 연구진은 성벽의 연대를 밝히기 위해 방사성탄소연대는 미국과 영국의 전문분석기관에 측정을 의뢰했고, 광자극발광연대는 국내에서 분석을 진행했다. 문화재청은 “특히 20건 이상의 절대연대 측정 결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해 국제적인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성벽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지반 조사, 토양 분석, 다짐 시험, 컴퓨터 모의실험 등을 진행한 결과 그동안 알려져 왔던 것과 달리 풍납토성은 한강 변에 있음에도 매우 단단한 지반에 건설됐다는 사실도 아울러 밝혀냈다. 또 성벽의 재료로 쓰인 토양의 화학 조성과 유기질 함량이 주변의 자연 퇴적토와 확연히 다르다는 결과도 나왔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지반의 특성과 구조물의 하중을 정확히 계산하고, 토양의 다양한 성질을 혼합하여 성토 재료의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백제 초기의 뛰어난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어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의 국가적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며, 이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의 성공은 한반도 중부의 지역 문화가 새로운 국가사회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의의를 덧붙였다. 2011년 발굴조사 당시 조사한 성벽은 현재 한성백제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며, 문화재청은 이번 연구 성과를 내년 초 보고서로 발간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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