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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보다 여가…대한민국 ‘라이프홀릭’
경기불황 불식 키워드 급부상
내년 ‘빨간날’ 최대 120일 관심
눈치보기 급급…휴가 등 적어



평촌에서 1시간 반 거리를 출퇴근하는 직장인 A(45) 씨는 매일 동 트기 전에 집을 나선다. 집에서 먹는 아침 밥은 꿈도 꾸지 못한다. 커피 한 잔의 여유는 언감생심이다.

하루에 그가 갖는 여가는 밤늦게 돌아와 TV 앞에 앉는 1시간 남짓이 고작이다. 주말에도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자주 체크한다. 휴가를 쓸까 말까 상사의 눈치를 보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긴 안락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거나 미니우산이 꽂힌 칵테일을 마시는 것은 그에겐 스크린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캐나다의 경제전문가인 린다 나자레스(Linda Nazareth)는 자신의 책 ‘레저경제학(The Leisure Economy)’에서 A 씨와 같은 유형의 직장인을 ‘시간예속자(time crunch)’라고 불렀다.


20세기 산업사회에서 직장인 A 씨는 ‘롤모델’이기도 했다. 노동은 선(善)이요, 여가는 게으른 자의 것으로 여겨져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대신 근면과 성실, ‘아침형 인간(early bird)’, ‘워커홀릭(workaholic)’ 같은 말들이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저출산과 베이비붐 세대 은퇴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무관하게 여가는 한 나라 경제 경쟁력을 좌우하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오히려 ‘여가’는 경기 침체를 불식할 대안으로도 떠오른다. 이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생존권, 재산권 등 전통적인 권리행사에서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라이프홀릭(lifeholic)’사회로 이동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라이프홀릭 세대는 폭발 증가세다.

우리나라도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9월 대체공휴일제가 도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가 인프라 조성 확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공휴일 수, 연간 휴가 수, 실제 휴가 사용일수, 여가활동유형 등 여러 여가 지표들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내년도 우리나라의 법정공휴일(공휴일+주말)은 총 66일이다. 내년 달력을 보면 52번의 일요일과 52번의 토요일, 그리고 16번의 휴일이 있다. 그러나 삼일절과 추석 연휴가 일요일과 겹쳐 실제 공휴일 수는 66일로 줄어든다. 주 5일제 실시로 토요일까지 ‘노는 날’로 치면 휴일은 114일이 된다. 여기에 대체공휴일까지 합하면 ‘빨간 날’은 120일까지 늘어난다.

그런데 대체공휴일제는 의무 적용이 아니어서 모든 국민이 다 120일까지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들은 ‘눈치 보는’ 분위기 탓에 실제 사용하는 휴가 일수도 외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대체공휴일제가 법으로 의무화된 주요 해외 국가들 중에서 내년에 빨간 날이 가장 많은 국가는 영국으로, 총 132일을 쉰다. 이어 폴란드가 130일, 오스트리아, 볼리비아, 그리스, 스웨덴, 프랑스, 룩셈부르크, 핀란드, 덴마크 등은 129일로 우리나라보다 ‘노는 날’이 최소 일주일 이상 많다.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얼리버드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여가사회에 적응하려면 인지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같은 생각의 틈을 비집고 라이프홀릭족은 ‘자유선언’을 하고 있다. 라이프홀릭족은 내년도 캘린더에 벌써 시선을 향하고 있다.

최상현 기자/sr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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