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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 장남식 손해보험협회 회장…30년 보험인생, 준비된 리더의 ‘3년 승부수’
[헤럴드경제=김양규 기자] 12년만에 탄생한 민간 출신의 손해보험협회장. 기존의 관(官) 출신과는 다를 것이라는 세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지난 9월 1일 제 52대 손해보험협회장에 취임한 장남식 회장.

업계는 그를 ‘소리없이 강한 CEO’로 평가한다. 매사 진지한 모습에서 그의 진정성은 누구에게나 신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30년간 보험 한 우물을 파온 보험업계의 산증인인 그가 이젠 특정 보험사가 아닌 손보업계를 아우르는 협회의 수장으로 변신했다.

그의 취임 자체만으로 손보업계 역사에 한 획을 긋기에 충분하다.

“솔직히 말해 손해보험협회장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 해보겠냐는 제의를 받고 반신반의했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마지막 열정을 불사를 기회가 시작된 것이다.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은 보험 인생 30년 중 절반가량인 15년을 해외업무 파트에서 일했다. 장 회장의 해외업무 경험과 노하우는 국내 손보업계의 글로벌화를 한 단계 진전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세계 전도를 말아 보이는 모습에서 국내 손보업계의 국제적인 위상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읽힌다.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사회학도의 보험외길 인생=학창 시절땐 의협심이 강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리더로서의 자질을 고등학생 시절부터 발휘했다. 반장이나 과 대표를 도맡으면서 주위를 이끌어가는 기질을 발휘했다.

“학창시절 공부를 썩 잘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경제학도가 되고 싶었으나 사회학과를 택했고 이를 극복하고자 학업에 더 충실했습니다.”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인데, 경제와 금융은 늘 관심이었다. 결국 첫 직장을 보험에서 시작했다. 당시 사회초년생으로 출발한 범한화재가 지금의 LIG손해보험이다.

경제학은 전공하지 않았지만 금융회사에서 쌓은 수 십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는 경제학자 못지 않은 금융전문가로 만들었다.


▶가족의 사랑이 나의 축복…하늘이 내린 책무를 맡다=작년 5월말 LIG손해보험 사장직을 그만 둘때 이미 임원생활을 18년 가까이 해오던 터였다. 오랜기간 사회생활을 했고 직장인으로서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 때 가족의 가치를 많이 생각했고 그동안 해 보지 못한 일들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특히 가족의 일원이자 가장으로서, 새로 생긴 외손자의 할아버지로서의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의 격려에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습니다. 한 회사의 임원이 아닌 보험산업 및 업계 공동의 발전과 증진이란 사명감이 부여된 직책이라고 생각하니 새로운 열정이 솟아 올랐습니다.”

앞으로 3년간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고 업계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손보협회장으로 공식 취임하던 첫 출근날 아내는 예전과 똑같이 아무말 없이 배웅했다고 한다. 새로울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직장인 LIG손해보험의 사장으로 승진했을때도 자녀들이 매스컴을 통해 알고 연락을 해올 정도였다고 한다. 회사에서의 일들은 집에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집안 얘기만 나눌 뿐이며 사회생활 중의 고민이나 각종 스트레스는 가족이 걱정할 수 있어 자제하는 편입니다.”

결혼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평범한 가정 주부로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했다.

2남 3녀 중 장남으로, 매형과 남동생, 막내 매제가 모두 교수인 탓에 집안분위기는 다소 엄격한 편이라고 전했다. 이런 영향 탓인지 인생관이자 자녀 교육관을 묻자 ‘베풂’이라고 했다.

“교육관이라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자식들에게 늘 남한테 베푸는 것이 행복임을 강조해왔습니다. 자식들 역시 제 뜻을 잘 헤아려줘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의 가족 사랑은 한마디로 ‘조용한’ 사랑이었다.

▶열정과 혼신으로 ‘재무장’=협회장 제안을 받고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답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보겠노라고. 회원사 사장단에서 맡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들었을 땐 자신감도 생겼다.

회장으로서의 공식 업무가 시작됐는데 한동안 집무실은 포기했다. 유독 관련 부처가 많아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다. 국회는 물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관련 부처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손보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도움을 요청했다.

“협회장직을 수락한 후 과연 내가 무엇을 해야하고 할 수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한 회사를 위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기때문입니다. 업계의 발전과 공정한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며 그 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무수히 되물었습니다.”

그 역시 오랜 직장생활 동안 기쁜 일만 있지는 않았다. 평생 잊지 못할 아픈 사연이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용기를 주던 선배의 일이다. LIG손보의 전신인 범한화재 시절 인생의 멘토이자 존경하는 선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직장 상사이자 인생에서의 선배였는데, 제가 런던 생활 중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은 또 다시 다가왔다. 매우 아끼던 후배가 미국 9.11 사태 때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도움을 주던 멘토 선배와 가장 아끼던 후배 멘티의 죽음은 그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월스트리트 건물에 대한 테러는 9.11사태 이전인 1991년에도 한차례 더 있었습니다. 당시 빌딩 사무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가 테러가 발생한 것을 직감하고 대피한 기억이 납니다. 빌딩 전체가 암흑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며 건물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악몽이 현재형처럼 다가오는 듯 했다.

“존경하고 아끼던 두 사람의 죽음은 직장생활 중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삶에 감사하면서 나 역시 누군가의 멘토이자 조언자가 될 수 있는 삶이였는가를 돌아보곤 합니다.”

▶“손보산업 발전의 첨병 되겠다”=보험회사는 기본적으로 수익창출이 목적이다. 협회는 다르다. 업계 공동의 이익과 산업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 이에 모든 보험사들의 이익을 증진하고, 업계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협회가 충실히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개별 보험사는 신속한 결정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하는 성과지향적인 곳 이지만 협회는 업계 공동의 이익을 위한 조직이어서 마음가짐이 우선 다르다고 했다.

아울러 보험시장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보험산업 발전을 이뤄나가는 데 초점을 맞출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를 위해 네가지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자동차보험의 경영정상화다. “자동차보험의 경영정상화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지난해 손보업계 전체 영업적자 규모가 9400억원 가량이며 올해는 지난 10월 손해율 기준으로 벌써 1조원을 상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동차보험을 제외한 장기보험에서 수익을 내 경상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 곳은 대형사에 국한된다. 협회는 업계 전체가 이익을 낼 수 있도록 맞춤식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또 세월호 사태 이후 사회안전망 확충에 손보업계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다. 즉 국민안전 확보의 일환인 의무보험의 활성화가 그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안전불감증으로 빚어지는 후진적 인적 재난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안전에 대한 국가시스템의 전면개조가 진행되고 있고, ‘안전이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만큼 노령층을 위한 맞춤형 보험상품을 개발, 보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 과제다. 보험산업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제고해 나가야 하는 것도 앞에 놓인 숙제다.

갈수록 손해보험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손보협회장이란 중책을 맡은 그가 앞으로 3년에 자신의 마지막 인생을 걸고 뛰기 시작했다.

kyk74@heraldcorp.com



■장남식 회장이 걸어온 길

▷1954년 부산출생

▷1973년 부산고등학교 입학

▷1977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2000년 McGill University 경영학 석사

▷1980년 범한해상화재(현 LIG손해보험) 입사

▷1990년 럭키화재 미국지점 부지점장

▷1993년 LG화재 미국지점 지점장

▷1998년 업무기획 담당 상무

▷2001년 럭키생명(현 우리아비바생명) 부사장

▷2002년 럭키생명 대표이사

▷2003년 LG화재 업무지원총괄 전무

▷2006년 LIG손해보험 업무보상총괄 부사장

▷2007년 법인영업총괄 부사장

▷2009년 영업총괄 사장

▷2012년 경영관리총괄 사장

▷2014년 9월 손해보험협회장 취임



■부산고 동창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본 장남식 회장은

장남식 회장과는 부산고 동기동창으로 매우 절친한 사이다. 내가 아는 친구 중 마음과 가슴이 가장 따뜻한 사람 중 한명이다.

장 회장은 집안형편이 다른 친구들보다 좋았다. 그렇지만 교만하지 않고 생활이 어려운 주변 친구들을 적극 나서 도와주는 친구였다.

유복하다보면 자칫 교만해지기 쉽다. 그는 동등한 입장에서 튀지 않고 (행여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 늘 조심스레 행동했다. 인품으로 보면 아주 훌륭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장 회장은 보험회사로 입사해 보험산업의 본 고장인 영국과 미국에서 오래 근무한 말 그대로 보험업계의 산증인이다. 영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감각도 갖췄다. 보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을 지닌 인물임을 자타가 인정하리라고 본다. 따라서 손해보험협회장으로서 매우 적합한 인물일 것이다.

고교시절 반장은 물론 학생회 간부를 거치면서 책임감도 길렀고, 동료들을 위해 솔선수범했던 친구였다.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학생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리더십을 갖췄기에 그를 욕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손보업계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곳으로 안다. 장 회장 만큼 많은 갈등과 오해를 잘 풀어갈 수 있는 사람도 없으리라고 본다. 모나지 않으면서 원만한 성격을 지녔고, 책임감이 강한 만큼 최적기에 최적임자를 선임했다고 생각한다.

12년만에 민선 협회장이 된 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을 안고 있을 것이다. 최근 그를 만나 손보협회장이 된 이상 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주문했다. 국내 손보산업이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많은 일을 해달라고도 했다.

그 역시 남다른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손보협회장으로서 최선의 노력으로 업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다시 한번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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