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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중공업-ENG 합병무산> 삼성답지 않게 무리하다 좌초…사업ㆍ지배구조 개편 차질 불가피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무산으로 지난 해부터 진행된 삼성그룹의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양사의 합병은 단순히 사업 시너지 차원을 넘어 지주사격인 삼성물산의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릴 수 있는 중요한 고리였기 때문이다. 결국 무리한 합병을 추진한 셈이 된 그룹 경영진의 판단에 대한 책임론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병이 자칫 깨질 수 있다는 관측은 지난 달 말 양사 주총 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5%이상 대주주인 국민연금을 필두로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이 반대 또는 기권표를 행사했다. 이 때문에 양사 주총에서 합병에 찬성한 주식수는 참가 주식수의 절반은 넘었지만 총 발행주식 대비로는 30%를 겨우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합병에 반대나 기권한 기관투자자들과 이에 동조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대규모로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리고 기관투자자들은 양사의 합병이 시너지보다는 재무적 부담만 더 높일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삼성중공업에서는 주가 높여 공개매수를 막기 위해 2886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주가가 상승은 했지만 공개매수가인 주당 2만7003원을 넘지 못했고, 오히려 투자자들이 주가하락 우려 없이 매도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준 꼴이 됐다.

이 때문에 시장은 물론 재계에서도 양사의 합병을 결정한 그룹 수뇌부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들 등 주주들의 예상 반응을 충분히 살핀 후 완벽하게 합병 환경이 갖춰졌을 때 일을 추진하는 게 삼성다운 치밀함인데, 이번 결정에는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면서 “정말 삼성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중공업의 매수청구권 규모는 발행주식의 14.8%로 최대주주인 삼성전자 지분률(17.61%)에 못미쳤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의 매수청구권 규모는 발행주식의 27%로 삼성 특수관계인 지분의 합(22%)을 크게 웃돈다. 재무 상황이 더 못한 삼성엔지니어링이지만 삼성중공업에 합쳐지기보다는 별도 법인으로 가는 게 더 낫다고 주주들은 선택한 것이다. 삼성이 강조해 온 양사 합병에 따른 시너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삼성중공업 최대주주는 삼성전자, 삼성엔지니어링 최대주주는 삼성전자가 대주주인 삼성SDI다. 법적으로 이번 합병을 추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주체는 삼성전자가 된다. 따라서 합병 무산의 1차적인 책임은 삼성전자에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합병 당사자였던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양사는 기존대로 별도 경영을 하면 되는만큼 업무상 차질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합병 차질에 따른 기회비용과 경영진의 소통 부족 등이 드러난 데 따른 무형의 피해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합병 무산 발표 직후 양사 주가는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그리는 큰 그림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삼성은 지난 해부터 제일모직의 패션부문과 소재부문을 쪼개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과 삼성SDI로 배치하고, 삼성SNS와 삼성SDS를 합병했다. 연관있는 사업끼리 묶는 작업이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도 같은 명분이었다. 특히 양사의 합병이후에는 유사 사업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대한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대주주이자, 다수 계열사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물산에 대한 수술은 그룹 지배구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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