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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인사이드] “잘못 운영했다간…” 야구팀에 울고 웃는 슈퍼리치

[특별취재팀=홍승완 기자] ‘김승연↑↑, 김택진↑↑, 정의선↑, 신동빈↓↓’

국내 재벌들에 대한 최근 ‘민심’입니다. 단서가 하나 붙습니다. ‘프로야구 팬들의 평가’입니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이나 프로야구 토론방, 일상에서 만난 열혈 야구팬들의 반응을 종합해본 것입니다.

야구팬들이라면 지난 한달 새 벌어진 일을 잘 아실겁니다. 이슈는 단연 ‘롯데 자이언츠’ 였습니다. 프런트-선수단 간의 파벌 싸움과 선수사찰까지 매일 업데이트되는 ‘다소 엽기적이기 까지한’ 소식은 흥미 진진했습니다. 뒤늦게 나마 문제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 물러나고 구단의 사장이 교체되면서 사태는 일단 마무리 되었습니다만, 부산 팬들의 분노는 사그라 들지 않는 모습입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신동빈 회장


특히 눈에 띄었던 점은 구단 오너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자이언트 관련 기사가 인터넷 포털에 등장할 때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언급한 팬들의 댓글이 많았습니다. “회장이 나서서 시원하게 정리하라”거나 “제 2롯데월드만 신경쓰지 말고 야구팀이나 좀 잘해보라”는 식의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선수 사찰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21세기 이게 뭔가, 과자는 물론이고 호텔이건 커피숍이건 롯데것은 쳐다도 안보겠다”는 엄포성 글도 있었습니다. 야구단에서 벌어진 일 하나가 그 팬에게는 롯데라는 거대 브랜드 전체를 외면하는 계기가 된 된 셈입니다.

반면 분위기가 정 반대인 곳도 있습니다. 한화 이글스 입니다.

한화 이글스는 올해도 꼴찌로 시즌을 마쳤지만 최근의 한화팬들은 신이나 보입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면서 내년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팬들은 야신의 ‘기본기에 충실한 독한 훈련’이 젊은 선수들의 투지와 잠재력을 끌어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에는 야구단 단장자리에 회장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비서실장 출신인 신임 사장을 선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회장이 야구단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화 이글스의 김승연 회장


그렇다보니 이글스 관련 기사에도 의외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팬들의 뜻을 알아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많습니다. 팬들은 한화가 야구판의 담합을 깨고 ‘구단에 까칠한’ 김 감독을 선임하는 데에는 김 회장의 속시원한 결단이 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한화는 수년째 이어지는 성적부진에도 불구하고 거액 연봉의 선수를 대거 영입하고, 서산에 2군 선수들을 위한 전용 훈련구장을 짓는 등 야구단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덕분인지 김승연 회장을 ‘화통하고 의리있는 구단주’, ‘할 것은 하는 리더’로 평가하는 한화팬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사실 국내 재벌기업에게 프로야구단은 메리트 있는 ‘계열사’가 아닙니다. 야구팬은 크게 늘었지만, 산업으로써 야구 저변은 여전히 취약합니다. 구단을 운영을 위해 매년 수백억원대의 운영자금을 모기업이 투입해야 합니다.

반면에 얻을 것은 별로 없습니다. 팀 성적이 좋으면 이를 계열사나 모기업의 마케팅에 일부 사용할 수도 있지만, 사실 큰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성적이 좋다고 대주주의 지분가치가 상승하는 것도 아닙니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만 먹게 됩니다.

해외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미국의 야구 구단주들은 존경과 인정을 받습니다. 야구팀을 원하는 도시는 많지만, 메이저리그 구단은 30개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경쟁을 뚫고 자기돈을 들여 야구단을 그 도시에 유치했다는 사실만으로 구단주는 지역민들에게 존중을 받습니다. 야구단을 돈벌이로 이용하지만 않으면 구단주가 크게 비난받는 일은 없습니다. 

반면 구단 운영을 잘하면 크게 칭찬받습니다.
고인이 된 뉴욕 양키스의 전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오만한 독불장군에 자비가 없는 기업가 였지만, 뉴욕 시민들로 부터 존중을 받았습니다. 막대한 투자로 양키스를 세계 최고 도시 뉴욕에 걸맞는 최강 구단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장 강한 팀중 하나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구단주 마이클 일리치(Michael Ilitch)도 비슷합니다. 자동차 산업의 부진과 함께 쓰러져가던 도시 디트로이트에 새로운 자랑거리를 만들어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이를 노리고(?) 부동산이나, 금융, 석유-에너지 등 ‘돈 쉽게 벌었다’고 비난받기 쉬운 업종의 거부들이 스포츠 구단을 인수해 운영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야구단을 잘 운영해서 ‘사회적 비난을 피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야구 잘하면 오너가 ‘존중’ 받기는 일본도 비슷합니다.


올해 우승팀인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구단주인 손정의 회장은 일본 젊은세대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습니다. 손 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마케팅으로 소프트뱅크를 상당히 짧은 시간에 21세기의 명문구단으로 키웠습니다. 이런 모습은 해외시장 개척을 두려워 않는 그의 비즈니스 행보와도 맞물리면서 젊은이들이 그를 ‘21세기의 리더’로 평가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우승팀인 라쿠텐 골든이글스 구단주인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2011년의 토호쿠 대지진으로 연고지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조차 어렵던 야구단에 오히려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구단을 2년만에 우승팀으로 만들었습니다. 실의에 빠져있던 도호쿠 지역민들에게 큰 선물을 안기면서 ‘승부할 줄 아는 기업가’, ‘어려울때 의지할 수 있는 리더’로써 더 평판을 얻었습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손정의 회장


내년이면 국내 프로야구도 출범 서른 네해째가 됩니다. KT의 참가로 구단도 두자릿수로 늘어납니다.우리 야구팬들의 애정이나 야구를 보는 눈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국내 슈퍼리치들에게 프로야구단은 계륵 같은 존재로 보여지는 듯 합니다. 등떠밀려 시작해 수십년째 운영은 하고 있지만, 철학이 명확하게 엿보이는 구단 오너는 몇 명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로야구단은 점점 ‘중요한 계열사’가 되고 있습니다. 당장에 큰돈이 벌리지는 않지만, 오너와 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충 운영했다가는 큰 코 다치거나 망신당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프로야구단 운영에도 혁신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s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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