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중국발(發) 자금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채권ㆍ주식시장을 통한 간접투자는 물론 부동산과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중국계 자금은 이미 ‘큰 손’으로 통한다. 한다. 최근에는 경제의 ‘혈맥(血脈)’인 금융사 M&A에도 중국 자금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에다 위안화 허브 전략, 오는 17일부터 시작되는 ‘후강퉁(상하이-홍콩 주식 교차거래 제도)’이 더해져 중국으로 자금이 빨려가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한국기업 사냥…채권ㆍ주식ㆍ부동산까지=중국 자본은 국내 M&A 시장에서 왕성한 ‘식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굵직한 기업에 대한 M&A 때마다 직접 인수 또는 재무적 투자의 단골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실제 뛰어든 사례도 적지 않다.
16일 글로벌 M&A 분석기관 머저마켓(merger marcket)에 따르면 중국 자본의 한국 기업 투자는 올해 상반기에만 9600억원으로, 2008년(120억원)의 80배로 늘었다.
초기에 제조업 중심이던 중국 자본의 진출 대상도 점차 경제의 자금줄인 금융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글로벌 M&A 시장의 큰 손’으로 꼽은 중국 푸싱(復星)그룹은 올해 들어 LIG손해보험과 KDB생명보험 인수를 타진한 데 이어 최근에는 현대증권 인수전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오는 28일 예비입찰을 받는 우리은행 매각에도 중국의 안방보험이 입찰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에 나서더라도 실제 인수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중국 자본이 국내 시중은행에까지 손을 뻗치려 한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점은 적지 않다.
지난해 우리금융그룹의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매각 당시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돈을 대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2011년에는 중국 최대이자 세계 최대인 중국공상은행이 우리금융 계열사이던 광주은행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다.
천용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한국 기업은 자본구조와 지배구조가 취약해 중국의 공격적인 M&A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자본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선 이미 중국 자본의 잠식이 본격화됐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중국 자금은 국내 상장 주식ㆍ채권 3조2250억원어치를 순매수ㆍ순투자해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가장 많았다.
중국에 넘어간 국내 상장채권은 13조6980억원으로 미국(19조218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중국이 보유한 국내 상장주식까지 더하면 23조65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주식 순매수의 약 60%도 중국이었다.
중국은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 부동산도 마구 사들여 중국인이 가진 제주도 토지는 지난 6월 말 592만㎡로 1년 전과 비교해 14배로 늘었다. 2010년 부동산 투자 이민 제도를 시행한 이후 제주도에 들어온 중국 자본은 1조원에 육박한다.
▶‘자금 블랙홀’ 현실화 되나=중국 자본의 규모는 세계에서 독보적 1위인 외환보유액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현재 4조달러를 넘은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부터 매월 평균 410억달러씩 늘었다. 1년도 안 돼 한국의 전체 외환보유액(3637억달러)만큼 증가한 것이다.
중국은 이를 국부펀드인 CIC를 통해 운용하고 있다. 2007년 설립된 CIC는 6년 만인 지난해 세계 5위의 국부펀드로 자리 잡았다.
중국 자본의 규모는 세계 은행 순위에서도 드러난다. ‘더 뱅커’지가 매년 집계해 발표하는 세계 은행 순위를 보면 지난해 중국공상은행(1위), 중국건설은행(5위), 중국은행(9위), 중국농업은행(10위) 등 4개 은행이 세계 10대 은행에 이름을 올렸다.
규모를 앞세운 중국 자본의 진출은 한ㆍ중 FTA 타결 이후 금융산업 규제가 완화되면 한층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FTA 타결과 병행해 추진되는 위안화 허브 전략은 양국 간 자금 흐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김재현 농협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중국은 미국처럼 한국 등 교역 적자국으로 자국 통화(위안화)가 들어갔다가 중국으로 다시 투자되는 순환 루트를 구상하고 있다”며 “한ㆍ중 FTA와 위안화 허브로 한국 경제의 중심은 점차 중국의 ‘대륙 경제권’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에서 중국으로 자금이 급격히 빨려 들어가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국내의 위안화 예금 규모는 2011년 8000만달러에서 올해 7월 161억9000만달러로 202.4배가 됐다.
지난 12일 외환은행이 출시한 위안화 정기예금 특별판매에는 이틀 만에 약 100만달러가 들어왔다. 우리은행이 지난 6일 출시한 위안화 예금 패키지에도 일주일 만에 352개 계좌가 개설돼 약 3200만달러가 들어왔다.
오는 17일 개시되는 후강퉁은 중국으로의 ‘자금 블랙홀’ 현상을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국내 투자자금이 한국이 아닌 중국 증시로 쏠려가고, 덩달아 외국인 투자자금도 한국 대신 중국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태종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 13일 한국증권학회 행사에서 “국내 주식시장에 있던 한정된 자금이 후강퉁 제도 시행으로 이탈할 수 있다”며 “실제로 증권가에는 중국 주식투자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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