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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사안일 대출관행 못 고치면 또 터진다
관세청 긴급 브리핑…전말 드러난 ‘모뉴엘 사태’일파만파
은행·貿保·당국 모조리 속은
3조2,000억원대 大사기극…제도 맹점 노려 실적 부풀리기
현금흐름 악화에도 매출은 급증…서류만 믿고 확인 제대로 안해



모두를 속인 무늬만 벤처기업 모뉴엘의 사기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위장수출로 금융권에서 최근 6년간 사기대출 받은 규모가 무려 3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모뉴엘은 수출실적과 매출이익을 뻥튀기하고 이를 속이기위해 또다른 위장을 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안일한 대출관행과 수출 금융에 대한 제도적 맹점이 개선되지 않은 한 제 2의 모뉴엘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31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모뉴엘 사태의 전말을 밝혔다. 은행과 무역보험공사, 금융당국 모두가 사기극에 놀아난 희대의 사건인 셈이다.

▶모뉴엘 6년간 3조2000억원대 사기대출 받아=모뉴엘이 2009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총 3330회에 걸쳐 약 3조2000억원 상당의 홈씨어터 PC 120만대를 정상제품으로 둔갑시켜 허위수출한 혐의와 446억원을 재산국외 도피한 혐의 등으로 모뉴엘 그룹 박홍석 회장을 비롯 3명의 경영진을 관세법 및 외국환거래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재산국외도피)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범죄에 가담한 관련자 13명을 불구속 조사 중이라고 관세청은 밝혔다.

구체 혐의내용은 재산국외도피 446억원을 비롯해 자금세탁 120억원, 수출입 가격조작 864억원, 허위수출입 1조2292억원, 불법해외예금거래 2조8129억원 등이다.(그림 참조) 


박홍석 회장 등 모뉴엘 주요 경영진은 은행들로부터 사기대출을 받기 위해 불과 8000원~2만원대의 홈시어터PC의 수출가격을 무려 120배를 뻥튀기한 2350달러(한화 250만원 상당)의 제품처럼 고가로 조작했다. 이를 홍콩에서 실제 물건의 거래가 없음에도 허위로 수출입 거래가 발생한 것 처럼 속여 약 3조2000억원 상당의 허위실적을 만들어 냈다. 특히 모뉴엘 경영진은 은행에 허위수출채권을 매각해 자금을 유용하다가 이후 대출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위장 수출입을 반복해 대출을 상환하는 수법을 활용했다. 또 자회사인 잘만테크를 통해서도 2012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홍콩에서 총 76회에 걸쳐 미화 8800만달러 가량을 수출한 것처럼 속였다.

이 같은 수법을 통해 모뉴엘은 외환은행 등 10여개 은행에서 최근 6년간 총 3조2000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아냈고, 현재까지 상환되지 못한 자금만 6745억원에이른다.

관세청 관계자는 “홍콩에 위장 조립공장을 만들어 은행 및 회계사무소가 실사에 나서면 현지인 30여명을 긴급 고용해 공장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 처럼 연출했다”며 “특히 거래되지도 않는 HTPC 4만여대를 마련해 이를 새 박스에 담아 포장한 후 창고에 쌓아놓는 등 공장이 활발하게 가동중인 것처럼 위장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하청 조립공장에 신형 부품을 갖춘 전시용 제품 30여대를 별도로 준비해 이를 보여주면서 실제 거래되는 제품인 것 처럼 속였다”고 덧붙였다.

모뉴엘 경영진은 위장수출 실적을 통해 국내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자금 중 446억원은 빼돌려 미국 캘리포니아에 주택을 구입하는 한편 개인 비자금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120억원 가량을 자금세탁해 국내로 반입하기도 했다. 국내로 반입한 자금은 카지노 도박 및 제주도에 개인별장 구입 등에 사용됐다.

▶은행, 무역보험공사, 금융당국 모두가 속은 모뉴엘 사기=모뉴엘은 허위 대출채권을 만들어 10개 금융기관에서 총 6768억원을 대출받았다. 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는 제대로 평가없이 보증서를 발급해줬고 금융기관들은 이 보증서만 믿고 돈을 내줬다. 실제 물품이 제대로 오고 갔는지, 선적 관련 서류가 거짓은 아닌지 확인은 전혀 하지 않았다. ‘서류’만 믿었다. 무사안일 대출관행의 전형인 셈이다.

‘2012년 히든챔피언 기업’, ‘빌 게이츠가 극찬한 기업’, ‘매출 1조 기업’이라는 허울만 믿고 보증하고 돈을 빌려줬다. 은행들은 또 신용만 보고 총 6768억원 중 2908억원을 내줬다. 동일 수법으로 금융권에 1조8000억원대의 대출사기를 벌인 KT ENS사건과 복사판지만 은행들은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매출이 일어난 장소만 다를 뿐 매출 채권을 조작해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행태는 대동소이하다.

모뉴엘은 수출기업대상 대출제도의 사각지대를 악용했다. 오픈 어카운트(open accountㆍOA)방식을 통해 매출을 부풀려 거액을 대출받았다. OA는 수출업자가 수입자와 선적 서류 등을 주고 받은 뒤 수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해 현금화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선적 서류 등이 은행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은행은 무역보보험공사의 보증이나 기업 재무제표만 보고 대출을 해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모뉴엘은 이런 맹점을 노렸다.

모뉴엘에 돈을 떼인 은행과 이 돈을 갚아줘야 하는 무보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내부적으론 안일한 심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대출심사가 아직도 신용도, 서류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감사보고서만 봐도 최근 3년간 현금흐름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당국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모뉴엘이 재무제표상 현금흐름은 악화되는데 매출은 급증하는 등 이상 조짐이 계속됐지만 눈치채지 못했다. 관세청발로 사태가 터지자 부랴부랴 검사에 착수했다. 


김양규·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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