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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로 간 간호조무사, 성악가ㆍ교수 거쳐 아프리카의 음악 ‘대모’로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전 평생 성악가로서 차고 넘치도록 누렸습니다. 명성과 인기도 얻었고 과분한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 감사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2004년 12월 28일 제 나이 예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밤새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 이듬해 남아공과 잠비아를 여행하면서 비로소 해답을 얻었습니다. 잠비아에서 뼈만 남은 아이들이 나한테 찰싹 매미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순간, 아∼마지막 ‘내 영혼의 고향’은 이곳이구나 깨달았습니다.”

50년전, 간호조무사로 독일을 찾았다. 그러나 한번도 ‘내 꿈은 음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돌보던 환자를 통해 음악계의 은인을 만났고, 독일 이주 5개월만에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배웠다. 1970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고, 스위스 베른 오페라단과 전속 계약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음악가로서, 성악가로서 미련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60세가 되던 해, 성악가로서, 교육자로서, 신앙인(가톨릭)으로서 새로운 사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아프리카에서의 인연 10년째, 개인적으로는 70세를 맞았다. 제자들로 구성된 음악 밴드와 함께 고국인 한국을 찾았다. 메조소프라노 김청자씨(70)의 이야기다.

김청자씨는 지난 22~24일 말라위에서 음악을 가르친 제자 11명으로 구성된 루수빌로 밴드와 함께 국립극장 청소년하늘극장에서 사흘간 공연을 펼쳤다. 김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2010년,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고, 짐을 싸서 홀로 아프리카 말라위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지난 현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음악교육을 시작했고, 2012년 3월, 카롱가에 뮤직센터를 지어 개관했다. 이에 앞서 2011년엔 망가냐 지역에 청소년들의 독서, 컴퓨터, 음악 등의 교육을 위한 유스 센터를 열었다. 지난해엔 수십 시간씩 스쿨버스로 이동하며 말라위 순회 공연도 가졌다.

김청자씨는 최근 아프리카에서의 봉사, 교육 활동과 신앙 체험을 써내려간 책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을 펴냈다. 두 번의 이혼을 겪은 후 평생을 바친 삶을 내려놓고 삶의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찾은 김씨의 이야기가 담겼다. 말라위 추장이 지어준 이름 ‘루세케로’(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라는 뜻)처럼 많이 받은 사람으로서 많이 나누어야 하는 소명감으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김씨의 진솔한 삶의 고백이다.

김씨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레오폴드 모차르트 음악원과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했으며 스위스와 독일 오페라무대에서 활동했다. 중앙대, 연세대 음대 성악과 교수를 거쳐 지난 1994년부터 2010년까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를 지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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