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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경비원의 ‘비애’
자식뻘 주민에 인격모독 받아도…혹시나 잘릴까 하루하루가 불안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 A씨는 일주일에도 수차례씩 택배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이 아파트는 무인택배함을 사용하는데도, 경비원이 직접 택배 물건을 챙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모욕적 언사를 들어야 하는 것. A씨는 “한 번은 딸 뻘 되는 학생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화를 낸 적도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의 한 아파트에서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을 시도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아파트 경비원의 노동환경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해당 경비원이 아파트 입주민의 횡포로 오랜 시간 고통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경비원의 감정노동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에 따르면 이번에 분신을 기도한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이모(53) 씨는 평소 이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폭언과 인격모독에 시달려왔다. 관계자는 “해당 아파트 주민이 분리수거 상태 등을 이유로 삿대질을 하거나 5층에서 먹을 것을 던지는 등 모욕을 줘 이 씨가 우울증 약을 복용해 왔다”고 말했다.

입주민의 횡포에 시달리는 경비원은 비단 이 씨 뿐만이 아니다.

상당수의 경비원들이 아파트 경비 업무 외에 온갖 잡일을 도맡아하면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B씨는 “화장실을 가거나 순찰을 도느라 자리를 비우면 그 사이에 방문한 주민이 근무시간에 놀았다며 민원을 제기한다”며 “24시간을 근무하는데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아파트 경비원들의 근무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전체 아파트 경비원 중 95% 가량은 24시간을 일하고 24시간을 휴식하는 2조2교대 형태로 근무한다. 이들의 노동시간은 연간 3100시간~4000시간이며, 휴식시간은 모두 무급으로 처리된다. 휴식이 길수록 임금이 줄어드는 구조. 법정휴가를 쓰는 경비원은 29.6%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 외 부당한 업무를 요구할 때 이를 거부하기도 힘들다. 80%~90%의 경비원이 간접고용형태로 계약돼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경비원도 최저임금의 100%를 받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일부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을 집단으로 해고하는 사례도 등장해 입주민의 횡포에도 경비원들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아파트경비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접 경비원을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최근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임금 상승을 우려해 15% 경비원을 부당해고하는 사례도 발생하면서 경비원들의 근로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며 “위탁업체를 통한 간접고용대신 직접고용을 통해 고용불안정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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