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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정용덕> 국회, 질(質)의 제고가 관건이다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의회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국민의 정서와 선호를 정책결정에 반영하고 그 집행을 감독함으로써 국가가 국민의 뜻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는 믿음, 즉 정당성을 부여한다. 민주주의 이행 27년이 되는 지금 우리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공ㆍ사 부문을 막론하고 가장 신뢰도가 낮은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적인 면에서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입법부’라는 호칭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입법이다. 그러나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의회가 다루는 법률안의 90% 이상이 행정부 제출안이다. 엄격한 삼권분립의 전통 위에서 대단히 높은 독립성과 영향력을 유지해 온 미국 의회지만 거기서 심의하는 법률안의 80% 이상이 대통령 제출안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처럼 입법권 행사가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영국에서 행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이 하원에서 통과되지 않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프랑스 의회에서 다루는 법안 가운데 의원제안 법률안 수는 행정부제출 법률안 수의 거의 8배에 이른다. 그러나 채택된 법률안에서는 의원 제출안이 행정부 제출안의 5%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이행이후, 특히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국회는 행정부 제출 법률안 보다 무려 6~7배나 많은 법률안을 제출했다. 프랑스와 비슷한 비중이다. 가결된 법률안의 비중에 있어서도 국회 제출안의 경우 17~18대 국회에서 각각 21%와 14%였다. 이는 행정부 제출안(51%와 41%)에 비하면 적은 것이지만, 프랑스 의회에 비하면 훨씬 더 효과성이 높았던 셈이다.

의회가 수행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행정부에 대한 감시ㆍ감독이다. 앞에서 예로 든 민주주의 선진국들의 경우, 입법 기능이 점차 감소되고 있는 반면에 행정부 견제 기능은 지속적으로 확대 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 이행 이후 우리 국회도 행정부 견제 기능에서 엄청난 양적 증가를 보이고 있다. 제헌의회에서 12대국회까지 40년 동안 40건에도 미치지 못하던 대(對)행정부 서면질문 제출 건수가 13대 국회 이후 수백 건에서 천 여 건으로 증가한 것이 한 예다. 2000년대 이후 5명의 국무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등 행정부와 사법부 고위직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우리나라 국회의 대 행정부 견제력을 짐작할 수 있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정치 엘리트의 충원도 의회가 수행하는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행정부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장차관을 지낸 사람 가운데 정치인의 비중은 대략 15%정도로 매우 낮다. 대통령의 정책기조가 정치적 시각보다는 행정부 내ㆍ외의 전문가적 시각에 좌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 11명 가운데 8명이 국회의원의 경험을 거쳤다. 의회 경험을 거친 대통령들의 집권 기간을 합치면 거치지 않은 대통령들의 집권 기간을 합한 것(약 25년)보다 2배 가까이 된다.

이처럼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국회는 비교적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질이다. 행정부 제출 예산안에 대해 고작 ±1% 내외의 수정이 이뤄지는 것이 전형적인 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거의 반년 가까이 파행을 거듭하던 국회가 지난주부터 재가동되고 있다. 내일부터는 2014년도 국정감사가 실시될 예정이다.

국정감사는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제도라면서 폐지를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상시 국회가 실현되지 않는 나라에서 정기국회 기간에 열리는 국정감사야말로 행정을 감독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불과 20일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정이지만 성심성의를 다해 국정을 살펴주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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