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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W리스트] 남의 잔치 뒤엎은 한국 파이터들 TOP5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남의 잔치판을 뒤엎는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격투기에선 원정경기에서 홈그라운드의 탑독 파이터를 메인이벤트에서 만나 KO로 꺾어버리는 상황이 그와 비슷하다. 다수가 원치 않던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국 스타를 응원하고, 상대에게 야유를 보내던 홈팬들은 일순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장내는 야유도, 박수도 없다. 그 기묘한 적막을 즐기며 선수대기실로 퇴장하는 안티히어로는 ‘황홀한 깽판’의 주인공이다.

적진에서 ‘테러’를 벌인 국내 파이터 ‘탑 파이브(TOP 5)’를 꼽아 봤다. 2위, 3위, 4위, 5위, 그리고 마지막으로 1위다. 사실 선정 순위는 큰 의미는 없다.

임현규가 반실신 상태의 사토 타케노리에게 계속 공격을 퍼붓고 있다. [사진=UFC 공식페이지]

▶2위: UFN 52, 일본 파이터들의 상품가치를 뚝 떨어뜨린 강경호와 임현규=일본국적의 한류 파이터 추성훈(39ㆍ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2년7개월 만에 복귀해 아미르 새덜러에게 완승하며 5년 만에 승리한 지난 20일 UFN 52 대회는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일본의 격투기 잔치와 다름 없었다. 그런데 그날, 동반출전했던 ‘에이스’ 임현규(29ㆍKTT)와 ‘미스터 퍼펙트’ 강경호(27ㆍ부산팀매드)는 주안상을 뒤엎고 주인장의 상투까지 쥐고 흔들었다.

이들이 일본 파이터들에게 승리했다는 단순 사실 때문에 이렇게 평가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임현규는 ‘오직 그라운드’인 사토 타케노리에게 우세가 점쳐졌었다. 단, 경기 초반 태클하러 들어오는 사토의 머리를 제압한 상태에서 머리에 펀치와 팔굽 수십방을 퍼부으며 일방적으로 승리한 모양새가 너무 잔인했다. 태풍 맞은 낙과마냥 사토의 상품가치가 바닥을 치게 만들었다.

강경호는 2대1 스플릿판정으로 신승했지만, 그런 결과의 후폭풍만 놓고 보면 더 못된 짓을 저질렀다. 상대 타나카 미치노리는 8전 전승으로 UFC에 입성해 데뷔전까지 9전승을 거둔 일본의 최고 상품중 하나였다. 그를 ‘독보적 아시안 파이터’에서 ‘원오브뎀(one of them)’으로 전락시켰다. 이런 강경호가 일본 팬들로선 얼마나 얄미웠을지는 알 만 하다. 그의 판정승이 선언되자 이례적인 부잉이 날아들었으니.

천재희가 강력한 카운터로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를 격침시키고 있는 장면. [사진=K-1 공식페이지]

▶3위: K-1 MAX, 거만한 야마모토 키드를 겸손한 아이로 만든 천재희=따져 보면 K-1에서 성공한 한국 파이터는 거의 없다. K-1 MAX에 최초 진출했던 김옥종은 그냥 자버(jobber)였다. ‘프로 태권도’의 이름을 걸고 올라간 김진우는 스도 겡키의 변칙 공격에 무릎을 꿇고 단발 출전에 그쳤다. K-1 MAX 대회의 한국 로컬대회 격인 K-1 파이팅네트워크 칸(KHAN) 대회가 애지중지 관리한 임치빈과 이수환은 일본 K-1 본무대에서는 한 번도 이기지 못 하고 실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별도의 관리나 우대가 없었으면서도 자신의 기량만으로 K-1에서 통한 파이터는 63kg급 ‘싸움닭’ 천재희(29)뿐이다.

천재희는 지난 2009년 7월 일본 원정 첫 경기이자 K-1 처녀 경기에서 ‘카미노코(신의아들)’란 터무니없는 별명으로 통하는 일본의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를 K-1 룰로 싸워 1회 실신KO로 무너뜨렸다. 키드는 비록 레슬러 출신의 종합격투기 선수지만, 이전에도 여러 차례 K-1 입식격투기 무대에서 유명 선수들을 꺾어온 양수겸장의 재능을 지녔다. 자유분방하다 못 해 오만하기까지 한 성격과 독특한 행보로 많은 자국 팬을 거느린 인물이었다. 그러나 희생양으로 불러온 천재희의 라이트 카운터를 맞고 잠들면서 급격히 겸손해졌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그 이후 최정상권을 맴돌던 키드는 내리막길 일로를 걸었다. 17승1패이던 그는 2009년부터 직전 경기인 2012년까지 6차례 경기에서 5차례나 패하며 사실상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천재희는 이후 같은 해 10월 일본 복싱 페더급 챔피언 출신인 와타나베 카즈히사에게도 완승하며 주가를 높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0년 최초로 열린 K-1 63kg급 토너먼트에서 ‘작은 마사토’ 우에마츠 다이스케에게 실신 KO패한 뒤로는 K-1에서 불러주지 않았다. 그를 어떻게든 지게 만든 뒤 퇴출시키려는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천재희는 산본에서 체육관을 운영중이다.

임재석이 글래디에이터 대회 겸 ‘마하 마츠리’ 이벤트에서 사쿠라이 마하 하야토를 TKO로 꺾은 뒤 승리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에 무릎을 꿇고 앉은 이가 사쿠라이다. [사진제공=천창욱 CMA코리아 대표]

▶4위: 일본 격투기 전설의 은퇴전을 망친 임재석=요즘 격투기팬에겐 다소 생소한 임재석(35)은 ‘얼음송곳’으로 통하는 강력한 펀치와 그라운드 기술을 겸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1세대 파이터다. 네오파이트 미들급(80kg) 준우승, 스피릿MC 미들급 GP 우승 등 화려한 실적을 쌓았으나 일본의 시라이 유야, 미국 아메리칸탑팀의 스티브 브루노 등 중견 외국인 파이터에게 연달아 실신KO패 하면서 국제 레벨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2010년 이후로는 화정 익스트림피트니스 관장으로서 지도자의 길에 더욱 집중하던 그가 작년인 2013년, 전성기 시절에도 겪어보지 못 한 초거물을 상대해 꺾는 파란을 일으켜 화제가 됐다. 사쿠라이 ‘마하’ 하야토(39ㆍ일본)가 자신의 이름을 따 도쿄 디퍼아리아케에서 연 ‘마하 페스티벌’에서 그의 은퇴전 상대로 나서 파운딩 TKO로 승리해 버린 것이다. 사쿠라이는 격투기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지난 1996년 데뷔해 슈토, 딥(DEEP), UFC, 프라이드FC, K-1 드림 등을 두루 거치며 통산 52전(37승13패2무)을 쌓은 일본 격투기의 전설 중 전설이다.

이 경기가 갑자기 성사된 배경이 더욱 극적이다. 당초 사쿠라이의 상대로 예정돼 있던 선수가 급거 부상결장하게 되면서 당시 이광희의 링세컨드로 참석했던 임재석에게 대회 당일 난 데 없이 오퍼가 온 것이다. 잠시 주저하다 출전을 수락한 임재석은 3시간의 준비운동만 마친 채 트렁크는 물론 마우스피스까지 빌려서 링에 올랐다. 어차피 사쿠라이의 잔치판이었고, 그의 은퇴전이기도 했으니 사쿠라이로선 ‘만만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재석으로 대전상대가 바뀐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여니 암트라이앵글로 죽일 듯 졸라대고, 여기서 탈출하니 얼음파운딩으로 두들겨대는 임재석은 자버가 아닌 호랑이였다. 은퇴전을 TKO로 패하며 망신살을 제대로 구긴 사쿠라이는 리턴매치를 곧바로 제안했으나 임재석이 단칼에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임재석은 “리턴매치 제안이 있긴 했는데 내가 거절한 적은 없고, 그 이후로 연락이 안 왔다”고 확인했다.

임치빈(오른쪽)이 오가타 켄이치에게 로킥을 날리고 있다.

▶5위: 일본 3대 킥복싱단체 에이스의 타월을 받은 임치빈=10년 가까이 중경량급 입식격투기 국내 최강자로 군림해온 ‘치우천왕’ 임치빈(35)은 전술했듯 해외 무대에서는 유독 힘을 못 썼다. ‘국내용’ ‘온실 속의 화초’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혹자는 원 라이트급(62kg)에서 미들급에 육박하는 70kg 맥스급으로 경기에 나서는 데 대한 체격적 핸디캡과 오랜 선수생활에서 쌓인 신체 대미지 등을 부진의 이유로 꼽았다. 일본 최강이자 엄청난 홈어드밴티지를 받는 마사토나 유럽 최강 중 한명이던 앨버트 클라우스에게 판정으로 진 것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코히루마키 타카유키(현 코히루마키 타이신), 키도 야스히로, 야마모토 유야에게 완패한 것은 변명하기 어려운 패배였다.

그러나 그가 매번 해외 원정경기에서 패한 건 아니다. 그의 원정경기 승리중 백미는 2005년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슛복싱 20주년 기념대회에서 마련된 당대 에이스 오가타 켄이치 전이었다. 오가타는 K-1의 에이스 마사토와 견줄 만 하다는 평가 속에 펀치의 파워와 기술로는 중경량급 최고라는 찬사를 받던 선수다. 그런 그를 임치빈은 레프트미들킥 등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2회 TKO로 꺾어버린다. 이 때 승리로 임치빈의 국제적 지명도가 급상승했다.

그런데 이 경기를 둘러싸고 대회 전부터 일본 슛복싱 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오가타의 패배를 원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대회 핵심 스태프에게 이 이상한 낌새와 관련해 묻자 망설이다 ‘뭐, 그런 게 있다’며 얼버무렸다. 임치빈의 주먹 밴디징에 규격 이상 큰 ‘뽕’(너클파트 모양새를 잡는 것을 발견하고도 ‘원래는 안 되는 건데 그냥 쓰라’고 묵인해 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단체 내 세력간 알력다툼은 아니었나 추정된다. 오가타는 2010년 은퇴하고 현재는 슛복싱 대표취재역 겸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김동현이 에릭 실바를 라이트 오버헤드 카운터로 실신시킨 뒤 승리에 들떠 양팔을 벌려 환호하고 있다. [사진=UFC 공식페이지]

▶1위: “엄청난 KO!” 화이트 대표도 혀 내두른 김동현=2008년부터이니 어느덧 UFC 7년차 베테랑 파이터가 됐다. 한국 종합격투기 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인 ‘스턴건’ 김동현(33ㆍ부산팀매드)은 UFC 이전 전적보다 UFC에 와서 쌓은 전적이 더 많은 국내 유일의 선수다. 그는 UFC에서 치른 14차례의 경기중 10번을 승리하고 3번은 패했다. 상대의 약물 복용으로 인한 무효경기가 1경기 있다. 매우 높은 승률이지만 화끈한 면에서는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제이슨 탄과 벌인 데뷔전에서만 TKO승을 거뒀을 뿐 매번 판정승으로 승수를 쌓은 것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상대에게 바싹 매달려 시간을 보낸다며 ‘매미권 창시자’란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었다. 심지어 퇴출설도 나돌았다.

그런 그가 이런 파이팅 스타일을 버리고 ‘닥돌(닥치고 돌진)’ 인파이터로 거듭난 전환점이 된 경기가 있다. 지난 해 10월 UFN28에서 브라질의 촉망받는 신성 에릭 실바(30)와 벌인 경기다. 코메인이벤트급으로 마련된 이 경기에서 주인공은 홈그라운드의 실바였던 게 확실하다. 김동현은 그 주인공을 2회 무시무시한 오버헤드 라이트훅으로 일발 실신KO 시켜버렸다. 원래 타격으로 풀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타격에서 객관적 우위였던 실바가 그라운드 게임을 회피하면서 스탠딩 공방이 주로 펼쳐지면서 이런 장면까지 결국 연출된 것이다. 당시 국내 중계를 하던 캐스터는 “2008년 UFC에 데뷔한 후 스턴건이 이제야 터졌다”며 놀라워했다. 데이너 화이트 UFC 대표도 “엄청난 KO”라며 찬사를 보냈다.

김동현은 이 경기 후 타격에 맛을 들인다. “다시는 매미권을 쓰지 않겠다”더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열린 올 3월 UFN 마카오 대회에서는 존 헤서웨이를 스피닝백엘보로 실신시키며 또 한번 깜짝 놀랄 KO승을 거둔다. 이후 직전 경기인 올 8월 대회에서 괴력 파이터 타이론 우들리에게도 전진압박 도중 백스핀엘보를 치려다 카운터를 허용하고 TKO패하면서 김동현의 닥돌 행진은 일단 주춤한 상태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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