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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에서 온 부장, 금성에서 온 대리…너무 다른 점심시간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점심(點心).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이다. 직장인에게 점심은 하루의 중간에 ‘쉼표’를 찍는 시간이다. 8시간 이상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인 것이다.

점심은 또 마음에 ‘느낌표’를 찍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이나 저녁과 달리 점심은 주로 직장 동료와 같이 하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시간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간혹 청춘 남녀 사원들은 솔직한 대화를 통해 사랑을 꽃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직장인의 점심시간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자신의 인사권을 쥔 상사 앞에서 분위기를 띄우다가 말 실수로 찍힐 수 있고, 그렇다고 말 없이 밥만 먹기에는 여간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니다. 상사 입장에서도 후배들의 식사비용 부담은 물론 괜히 친근감을 나타냈다가 가벼운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어 마음 편히 밥 먹기는 어렵다.

▶혼자 밥 먹는 부장, 왜 그런가 했더니=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김 모(49) 부장은 이따금 부서원들과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곤 한다. 평소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기강을 강조하다보니 사내에서 ‘호랑이 부장’으로 소문났기 때문.

그는 점심시간을 소통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일주일에 2~3회 회사 인근 식당에서 부서원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마련하지만 좀처럼 벽을 깨기는 힘들다.

살가운 대화는 커녕 입을 꾹 다물고 자기 앞에 놓인 음식만 먹는 후배들의 모습에 괜히 미안해진다. 혹여나 젊은 직원들의 수다에 참여하려다 대화가 끊어지기도 일쑤다. 이러다보니 점심시간에 혼자 식사하는 것이 오히려 부서원을 돕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최근 ‘나홀로 점심’을 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김 부장과 달리 현실적인 문제로 후배와의 점심을 꺼려하는 상사도 있다. 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최 모(43) 차장.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인간관계는 ‘사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요즘은 점심시간만 되면 후배들 눈치보기에 바쁘다. 회사에서 별도의 식대가 나오지 않는 탓에 매번 후배들의 식사를 사주는데 드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 그렇다고 후배들 앞에서 “돈 없다”고 말하기도 체면이 서지 않는다. 저희가 한번 살테니 같이 가자는 후배가 있으면 그렇게 기특해 보일 수가 없다.

‘기러기 아빠’ 유 모(52) 팀장도 이런 고민 때문에 팀원들을 피하고 있다. 외국 유학 중인 자녀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는데도 벅차다. 이 때문에 공짜로 배 부르게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을 애용하고 있지만, 가끔씩 팀원들의 ‘외식’ 요구에 불편한 식사를 하곤 한다.

▶밥보다는 자유, 후배들의 속마음은=A유통업체에서는 최근 20~30대 직원들이 점심시간 직전 부서장의 동향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다. 점심시간 만큼은 업무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이따금 떨어지는 “부서 회식” 명령에 쉴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정 모(35) 과장은 “개성이 강한 젊은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기보다 자기개발을 많이 한다”면서 “점심식사보다 자유시간을 원하는 게 젊은 직원들의 트랜드”라고 전했다.

부서 회식은 친목을 도모하고 유대감을 강화하는 자리지만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상사들의 업무 지시와 질책이 이어지는 업무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이 많다. 40~50분동안 이 같은 비생산적인 대화를 하다보면 쉬는시간에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고 오후 업무를 맞이하게 된다.

지난해 입사한 곽 모(28) 사원은 구내식당에 가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자칫 상사들에 눈에 띄어서 불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곽 사원은 “오전 내내 사무실에서 시달렸는데 금쪽같은 점심시간까지 눈치밥을 먹을 수는 없다”면서 “회사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식당을 자주 이용한다”고 털어놨다.

온갖 애교로 식사 자리에서 상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강 모(29ㆍ여) 사원도 최근 들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고칼로리 음식 위주인 회식 식단으로 학창시절 늘씬했던 몸매가 조금씩 망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 사원은 입사 때보다 7㎏이나 체중이 늘었다고 귀뜸했다. 그는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거나 점심을 거르고 회사 헬스장으로 직행한다”면서 “몸매와 자신감을 되찾는 게 추선”이라고 말했다.

혼자 점심을 먹는 직장인이 늘면서 회사 밀집지역에는 식사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건강식을 찾는 직장인을 겨냥한 샐러드 도시락점이나 테이크아웃 샐러드바도 늘었다. 기존 식당들도 점심시간에는 4인용 테이블 대신 1인용 탁자를 준비해 나홀로 식사족을 맞이하고 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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