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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화와 육담의 상상력에 펼친 조선의 ‘자유부인’, 김별아의 ‘어우동’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어느새 옷고름이 풀렸다. 저고리 아래 얄따란 속적삼이 비명을 삼키며 버석거렸다. 사내의 손끝은 뜨거웠다. 달아오른 쐬꼬챙이 같은 욕망이 속적삼을 헤집고 치마끝을 줴뜯었다. 달고 물 많은 배처럼 뽀얀 어깨가 수줍은 속살을 드러냈다. 한 입 베어 물면 입가로 주르륵 단물이 흐르는 수밀도 같은 앙가슴이 툭 튀어나왔다.”

김별아(46)의 신작 장편소설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해냄)는 조선 성종시대 왕의 종친부터 중인은 물론이고 노비까지 상대로 아우른 희대의 성추문 주인공이었던 실존인물 ‘어우동’(박어을우동)의 남성편력기다. 각양각태 남녀의 엉킨 몸이 적나라한 신윤복의 그림같은 춘화의 상상력 속에 어우동을 데려다 놓고 앞으로는 추상같은 유림이요, 뒤로는 기생의 속적삼이나 헤집던 유교국 조선의 남성들을 희롱하고 시대를 비웃었던 ‘자유여성’의 ‘욕망의 탐험기’를 마음껏 펼쳐놓았다. 김별아는 어우동을 시대적 편견과 남성 중심 사회의 ‘피해자’로서의 면모보다는 스스로 윤리와 도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와 쾌락을 누렸던 능동적인 여성으로 묘사한다. 여성의 몸과 욕망을 꽁꽁 얽매고 옭죄고 가두며 한 치의 어긋남조차 잘라내려 했던 유 유교사회의 ‘프로메테우스의 침대’와 본능적인 애욕이 기기묘묘한 용틀임을 하는 ‘쾌락의 정원’ 사이에서 어우동은 그 어느 속박에도 굴하지 않는 자유지상주의자이자 쾌락주의자이며, 마침내는 허무주의자가 된다. 한 여성이 남성이 만들어놓은 규방의 꼭둑각시에서 세상의 뭇남성을 희롱하는 광대가 될 동안, 조선의 주인이었던 남자들은 벼슬과 경서 속에 숨겨놓았던 열등감과 비열한 야망의 발톱을 드러낸다. 어우동이 상대하는 십수명의 남성들은 서자이기 때문에, 종친이기 때문에, 중인이기 때문에, 노비이기 때문에 좌절하고 상처받은 ‘짐승’들이다. ‘어우동’이 탐할 수 있으나 가질 수 없는 ‘꽃’, 오로지 스스로 피우는 ‘꽃’임을 아는 순간, ‘상처받은 짐승들’은 울부짖거나 도망하거나 스스로를 부인한다.

1980년대 에로 영화인 이보희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어우동은 실록에 ‘박어을우동’으로 기록된 인물로 효령대군(세종의 둘째형)의 서손자인 이동의 부인, 즉 왕 종친의 며느리였다. 그러나 박어을우동은 첩에 빠진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몇 년 뒤 간통 사건에 걸려들게 된다. 어을우동의 간통 상대는 화려했다. 위로는 왕의 종친들부터 아래로는 은을 다루는 장인과 사노비까지 십수명에 이르렀다. 장안에 소문이 돌고 사헌부의 조사로 어우동의 남성편력이 알려지면서 조정에서는 희대의 ‘음녀’에 대한 처벌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다수의 신하들은 ‘법대로’를 주장했으나 소수는 법을 넘어 극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고집했고, 성종은 결국 어우동을 교형에 처한다. 세종 때 일어났던 또 다른 희대의 섹스스캔들인 유감동 사건에서 간통 당사자인 유감동을 세종이 귀향으로 다스린 것과는 딴판이었다. 소설은 성종의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에 비교적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한다. 열 세살에 왕위에 올라 대비의 수렴 청정과 엄한 어머니 밑에서 군왕으로서의 수업을 받아야 했으며, 투기죄로 왕비인 윤씨를 폐비시켜야만 했던 성종의 개인적인 상처와 열등감을 보여줌으로써 왜 어우동이 극형을 받아야 했던 당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는 실록에 기록된 사실에 주인공의 개인사와 남성편력기에 상상을 보태 완성했다. 어우동이 죽고 나서 어우동을 낸 박씨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는데, 실록에서 기록된 바 그것을 부채질한 것은 어우동의 오빠가 친모를 살해한 사건이다. 소설은 어우동을 겉으로는 지체 높은 가문이지만 속으로는 서로간의 갈등과 폭력으로 점철된 집안의 딸로 커 애초부터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가진 존재였음을 강조한다. 이후 첩에 빠진 남편에게 버림받고, 어디로도 갈 데 없는 존재가 되면서 어우동은 한 여성이자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운명과 욕망, 자유를 자신 속에서 발견해간다. 


“그가 붓을 들면 그녀가 먹을 갈았다. 그녀가 글을 쓸 때 그는 묵향과 난장을 음미했다. 대봉감처럼 탐스럽게 튀어나온 젖가슴을 드러낸 채 그녀는 떠오른 시상을 일필휘지로 적어 내렸다.”

“나는 도깨비 쫓는 방망이를 말했는데 너는 무슨 방망이를 생각했느냐? 이리 보니 안방샌님같이 해사한 얼굴을 하고 마음엔 능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구나!”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는 성적 묘사가 수위 높은 ‘통속소설’이자 순수한 사랑을 간직한 두 남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멜로이며,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자유와 욕망을 그린 ‘여성소설’이다. 육담을 방불케 하는 작가의 입담과 생생한 묘사력이 특히 여성 독자들한테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이상의 흥분과 통쾌함을 가져다줄만한 작품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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