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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은 아직도 난쏘공.. 전쟁터 방불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1. 입시가 끝난 반에 수학교사가 들어와 뫼비우스의 띠를 설명하던 도중, 꼽추와 앉은뱅이라는 철거민 얘기를 꺼낸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 살던 집에서 쫓겨난 두 철거민은 부동산업자에게 돈을 더 받아내기로 한다.

부동산업자가 오자 앉은뱅이는 그의 앞에 드러누운 채 토지가치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라고 악을 쓰지만 오히려 부동산업자에게 걷어차인다. 참다 못한 꼽추는 부동산업자를 쓰러트리고, 앉은뱅이는 그를 차에 태워 차에 불을 지른다. 얘기를 마친 수학교사는 잘못된 목표를 위해 지식을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교실을 떠난다.


1970년대 도시 빈민층 삶의 애환을 다룬 조세희의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수록된 ‘뫼비우스의 띠’의 줄거리다. 지금의 현실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굳이 있다면 피해자의 범주다. 1970년대 철거민의 계층이 도시 빈민층이었다면 오늘날의 철거민 계층은 사회 중산층이라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미 서울 전역의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사업 현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철거민이 되어버린 중산층 조합원들과 건설사 간의 끝나지 않는 지리한 싸움이 진행 중이다. 갈등이 극에 달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비방, 흑색선전, 물리적 충돌, 소송이 난무한다.

70년대 극소수에 불과했던 철거민 수가 오늘날 중산층까지 포함하며 구역별로 수백명에서 수천명까지 증가하다보니 철거민과 ‘부동산업자’ 간의 세 싸움은 옛날과 달리 백중지세다. 사업 진행은 안 되는 상태에서 갈등의 골만 깊어가는 형국이다.

최근에는 서울 뿐 아니라 경기도, 부산 등 지방에서까지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15일 오후 찾은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의 한 재개발구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공사 선정을 2주 앞둔 이곳 역시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개발을 강행하려는 건설사 간의 치열한 기싸움이 전개되고 있었다.

서울과의 거리는 불과 한 시간 남짓인데, 서울에서는 4~5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여성 ‘OS(아웃소싱: 조합 업무를 의뢰받은 외부 용역업체) 요원’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개발 반대 주민들은 조를 이뤄 그들을 쫓아다니며 비난하고 있었다. ‘난쏘공’ 속 등장 인물인 앉은뱅이, 꼽추, 부동산업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잘못된 목표를 위해 지식을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한 수학교사의 가르침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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