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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국정원의 ‘염화미소, 이심전심’?
[헤럴드경제=김재현 기자]불가에는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할 때, 말없이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더니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지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심전심으로 뜻이 통한다는 말이다.

지난 11일 중앙지법의 원세훈(63)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판결에서 나온 국정원의 모습은 이같은 ‘염화미소’의 경지를 떠올리게 한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관련 판결에서 “주요 증거로 제출된 ‘원장님 지시ㆍ강조말씀’에 18대 대선 선거운동에 대해 ‘특정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선거에 개입하라’는 지시는 포함돼 있지 않다”며 “피고인들 행위가 선거 또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도 그게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원 전 원장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지하고, 누구를 반대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의 ‘지시ㆍ강조 말씀’에 따라 행동한 국정원 직원들은 특정 정당과 후보자에 대해 일관된 지지를 보냈고, 그 상대편들에 대해서는 일관된 반대를 보냈다. 재판부는 국가정보원법 위반에 대해 다투면서 “피고인과 심리전단이 어떠한 의도에서 이 사건 사이버활동을 전개했더라도 그 구체적 행위가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반대임을 인식했다면 정치 관여다”고 말하며 국정원 직원들이 특정 정당 및 후보는 지지하고, 그 상대편들을 반대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과거 유명했던 CM송을 인용하자면 국정원 직원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며 원 전 원장의 마음을 읽고, 그 뜻을 따르는 ‘염화미소, 이심전심’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판결에 대해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반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재판부의 판단이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형법)는 “국정원의 정치관여는 결국 대선의 당락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일 텐데, 그 부분이 왜 무죄인지 이해가 되지않는다”며 “대선 결과의 공정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재판부가)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잘못도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 행위가 선거 또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도 그게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에는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며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형사법의 대원칙에 따라 피고인들에게 형사책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검찰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원 전 원장과 국정원을 수사한 수사팀은 중간에 팀장이 교체되는가 하면, 팀원들 역시 대부분이 정기 인사에서 지방으로 내려갔다. 공소유지를 위해 재판이 있을때마다 서울에 올라와 참여했다고 하지만 새로운 직무를 수행하면서 이 일도 동시에 맡으려면 집중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1년 9개월여동안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은 ‘반은 유죄 반은 무죄’라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앞으로도 2심, 또 대법원의 판단까지 기다려야 할 일이겠지만 이 과정에서도 국정원의 ‘염화미소’가 받아들여진다면 1심의 재판 결과가 쉽게 바뀌긴 어려울 전망이다.

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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