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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지 주겠다” 말에 따라갔다 길 잃은 남편, 17시간만의 새벽 귀가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추석 연휴의 시작이었던 지난 6일. 모두 명절 분위기에 들떠 있던 이날 저녁 7시30분께 서울 강서경찰서에 한 통의 신고전화가 들어왔다. “치매 걸린 남편이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주우러 나갔는데 9시간째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고자는 강서구 화곡1동에 사는 80대 할머니. 까치산지구대 근무자 2명과 강서서 실종수사팀, 112타격대 등 경찰 10여명이 할아버지를 찾아나섰다. 순찰차까지 동원해 골목골목을 뒤졌지만, 밤 12시가 다 되도록 할아버지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경찰서에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건 밤 12시30분께. “차도에 방치된 리어카가 위험하니 치워달라”는 민원이었다. 할아버지의 것임을 직감한 경찰은 신고자인 수퍼마켓 주인을 방문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서있어 물도 드리고 말도 걸었는데 어느 순간 리어카만 두고 사라졌다”고 했다. 경찰은 주변을 뒤져 500여m 떨어진 곳에서 할아버지를 찾았다. 발견 당시 그는 차가 쌩쌩 달리는 캄캄한 도로를 위태롭게 건너고 있었다. “할머니가 찾는다”고 하자 할어버지는 그제서야 배시시 웃었다.


그가 길을 잃은 사연은 이랬다. 단 둘이 살던 노부부는 이날 아침에도 폐지를 주우러 길을 나섰다. 추석 선물 세트 덕에 폐지는 평소보다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다른 할아버지가 “폐지를 주겠다”고 했고 부부는 그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무릎이 성치 않은 할머니는 먼저 귀가했다. 그렇게 헤어진 시각이 오전 11시. 그리고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까치산지구대 2팀장 이동규(52) 경위는 “발견 당시 할아버지는 매우 지쳐있었다”고 했다. 집을 나선 시각부터 발견되기까지 약 17시간. 밥 한끼 못 먹고 길을 헤맨 그의 리어카에는 폐지가 제법 쌓여 있었다. 귀갓길, 김상복 순경은 할아버지의 리어카를 끌었고 이 경위는 할아버지를 순찰차에 태운 채 수레를 ‘에스코트’했다.

할아버지를 찾은 할머니는 경찰 손을 잡고 연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만 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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