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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이디푸스는 왜?…못다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프로이트
가상 만남 통한 신화의 재구성

친부살해 · 근친상간…
흥미진진한 진실게임 속으로



“나의 목표는 애매모호한 것들을 해결해서 이성의 빛을 비추는 것이오. 종교적 선언의 애매모호함은 선언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강화하려는 속임수일 뿐이고.”

“아폴론은 순수하고 빛나는 존재이자 만물을 밝히는 빛의 신 포이보스였지만, 또한 모호하게 하는 자, 애매함의 신인 록시아스였소. 태양은 비스듬하게 타원형의 궤도를 돌기 때문이오. ”

오이디푸스에게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동침한 자가 바로 그라는 신탁을 알려줬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대화를 한다. 인간의 불합리한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 ‘무의식’에 이성의빛을 비춰 ‘성적 욕망’이라는 열쇠를 찾아냈던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신화가 다시 써 진다. 테레시아스의 ‘증언’으로 신화가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신화는 다시 이성의 빛을 거두고, ‘애매모호함’이라는 베일 속으로 숨어든다. 영국출신의 작가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샐리 비커스의 ‘세 길이 만나는 곳’은 근대의 이성이 앗아간 애매모호함을 신화에 되돌려줌으로써 신화가 가진 원초적 상상력을 복원시키려는 시도다. 셀리 비커스는 오이디푸스 신화 속 인물인 예언가 테이레시아스와 구강암으로 투병 중인 노년의 프로이트의 대화를 상상함으로써 아주 유명하고 오래된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샐리 비커스(66)의 장편 소설 ‘세 길이 만나는 곳’은 영국 캐논게이트 출판사가 기획하고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33개국의 출판사가 참여하고 있는 ‘세계신화총서’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이다. ‘세계신화총서’는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다양한 지역과 시대의 신화들을 재해석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기획이다. 샐리 비커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됐고, 영문학과 분석심리학을 공부한 경력을 바탕으로 오이디푸스 신화를 다시 써내려갔다. 오이디푸스 신화에 등장하는 장님 예언가 테이레시아스가 말년의 병든 프로이트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는 발상으로 출발해 두 인물간에 오가는 열띤 논쟁과 증언, 이야기를 담았다. 

세 길이 만나는 곳
/샐리 비커스 지음
/강선재 옮김/문학동네
소설 속 프로이트는 67세이던 1923년 구강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인 어느날 낯선 이의 방문을 받는다. 반복되는 수술과 투병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에 처했던 프로이트는 낯선 방문객을 내친다. 하지만 15년이 흐른 1938년, 나치 정권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 프로이트에게 방문객은 다시 찾아오고, 그는 자신이 목격했던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그 때부터 1년여간, 프로이트가 죽을 때까지 오이디푸스의 숨겨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신으로부터 점지된 운명(신탁)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후, 왕비인 어머니와 결혼하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어둠 속에 빠진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다. 이 신화로부터 프로이트는 ‘아버지 살해’와 ‘어머니와의 동침’이 인간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욕망이라는 유명한 정신분석 이론을 만들어 후대 심리학과 정신병리학, 문학,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자 샐리 비커스는 프로이트를 찾은 테이레시아스의 입을 빌어 프로이트가 ‘친부 살인’과 ‘근친상간’이라는 소재에만 주목한 까닭에 오이디푸스가 담고 있는 다층적인 의미를 놓쳤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아버지-어머니-아들이 이루는 ‘욕망의 삼각형’ 중 잊혀지고 삭제된 하나의 꼭지점이 바로 어머니, 곧 왕비인 요카스테라는 것이다. 소설 속 테이레시아스는 프로이트에게 “나는 굉장히 자주 그녀(요카스테)를 생각하면서, 당신이 이 이야기를 설명할 때 왜 그토록 그녀를 경시했는지 궁금했다”며 “그녀는 정말 남편의 목숨을 염려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린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여, 아들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묻는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이론 속에서는 진실로부터 소외되고, 욕망의 대상일 뿐이었던 여성, 어머니, 요카스테는 “믿고, 희망했고, 기도했으며”, “가장 깊숙한 곳에” “결코 말해질 수 없는 욕망”, 즉 “소중한 첫아들을 자신의 자궁으로 되돌려 놓는 것”을 갖고 있는 존재로 생명을 얻는다.

샐리 비커스가 다시 쓴 오이디푸스는 오로지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 기호가 아니라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 싶어한 욕망”을 뜻하는 이름이 된다. 그래서 운명으로서의 ‘신탁’을 알려고 하고, 그로부터 도망가려고 했으며, 그것을 이겨내려고 했던 인물이다. 소설 속 테이레시아스는 “비극을 불러오는 것은 신들이 아니다. 우리 인간들이 신호(신의 뜻)들을 오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샐리 비커스는 프로이트에게 “이야기(오이디푸스 신화)의 규모는 제대로 파악했지만, 전체적인 요점은 파악하지 못했다”며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오이디푸스)만은 당신이 그를 위해 만든 그 콤플렉스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의 날을 겨눈다.

224쪽의 비교적 짧은 장편이지만, 소포클레스의 희곡(‘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과 셰익스피어의 희곡, 소설가 키플링의 작품을 자유자재로 끌어오고, 프로이트의 전기적 사실과 신화의 인물들을 능란하게 버무린 구성과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특히 ‘진실게임’처럼 전개되는 형식이 읽는 재미와 속도를 더한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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