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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 수도 라카는 ‘리바이어던’의 공포도시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시리아 제2 도시 알레포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카드리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폭격으로 공장이 붕괴됐다. IS의 맹공에 카드리는 갈림길에 섰다. 집에 남아 죽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들처럼 터키 난민 캠프로 도망치는 것. 그러나 카드리는 두갈래 길 앞에서 제 3의 길을 선택했다. 북쪽 터키가 아닌 동쪽 라카로 가기로….

라카는 사실상 IS의 수도다. IS는 시리아 라카를 손에 넣은 후 인구 100만명이 살고 있는 이곳에 본부를 설립했다. 전시(戰時)관리체제와 무력을 동원해 라카에 이슬람 원리주의와 현실적인 통치술을 결합한 국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시리아 북부 라카 시내를 행진하는 이슬람국가 대원들. [출처:라카미디어센터]

카드리가 라카를 택한 이유는 내전 장기화로 혼란스러운 여타 시리아 도시와는 달리 질서와 치안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검은 세력(IS의 대표색)이 지배하는 라카에는 폭정 속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카드리는 이곳에서 아동복 제조공장을 새로 설립하고 수십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그는 IS의 보복이 두려워 풀네임을 밝히지 못하고 성을 뺀 이름만을 알려주면서 “시리아에서 전투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라카 현지 상황을 전하면서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 수도에서의 삶은 곧 암흑 속의 질서”라고 평가했다.

NYT는 라카에 접근하기 위해 복수의 고용인을 두고 6일간 현지에 머물게 한뒤 익명을 전제로 한 주민 인터뷰를 실었다.

▶IS가 이룩한 국가질서=전쟁에 지친 시민들은 전투가 멎은 라카의 일상생활이 허울 뿐인 평정이라도 존중하는 분위기다. 그중 한 명인 카드리는 “아직도 반군세력이 장악하고 식량부족과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알레포에 비하면 라카는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라카의 도로 교통은 질서정연하고, 범죄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세금을 내면 제대로 된 영수증도 발행된다. 한 전직 교사는 “라카에서 지금 목도되고 있는 것은 IS가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를 세우려는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라카 시청에는 이슬람위원회가 들어섰고, 과거 재무부 사무실은 이슬람(샤리아) 법정으로 바뀌었다. 교통경찰은 제1 샤리아고등학교를 거점으로 삼았고 라카신탁은행은 세무서가 됐다.

세무 직원들은 상인들에 전기, 수도, 치안유지 명목으로 2개월마다 20달러씩 징수하고 있다. IS 로고가 찍힌 영수증을 받은 상인들은 “아사드 정권 아래서 뇌물로 바친 것보다 싸다”고 말했다.

귀금속점을 경영하는 점주는 “폭력배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존경받는 국가에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현실에 만족해 했다. 


▶‘리바이어던’의 살얼음판 질서=하지만 과격세력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는 살얼음판이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가 쓴 국가론인 ‘리바이어던’과 닮았다. 리바이어던은 구약 성경 ‘욥기’에 나오는 바다 속 괴물로, 괴물이 돼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일컫는다.

IS는 매주 금요일마다 자행되는 공개처형과 엄격한 사회규범으로 주민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유엔 시리아 인권조사위원회(COI)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IS가 장악한 시리아 북부와 북동지역은 매주 금요일마다 광장에서 참수형과 채찍질이 자행된다. 이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 강제로 지켜보도록 하고 시신을 며칠 동안 방치해 주민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있다.

또 흡연을 하거나 술을 갖고 있는 경우, 기도 시간에 장사하거나 라마단 기간에 단식하지 않을 경우 모두 공개적으로 채찍질을 당한다. 도둑질을 한 사람은 손목이 잘리고, 머리카락과 얼굴을 제대로 가리지 않은 여성들은 막대기로 두들겨 맞는다. IS는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종교 율법에 따른 처형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종교경찰’이라는 조직은 라카의 공공장소에서 담배와 물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하고 카페를 강제 폐쇄시켰다. 소수파 기독교인을 위한 교회는 봉쇄돼 이제는 IS의 검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시장과 식료품점, 제과점, 주유소 등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지만 식수와 전기는 충분하지 않다. 하루 20시간 정전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카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IS조직은 과격한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며 “이들은 통치보다 폭력 자체에 사로잡힌 청년들로, 시민생활을 지탱하는 숙련 노동자들을 돈과 힘으로 강제적으로 노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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