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지웅ㆍ박혜림 기자] 광화문 일대 세월호 관련 시위대를 경찰이 포위하듯 ‘차벽’으로 둘러치는 행태가 관습처럼 계속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11년 사법부가 경찰의 차벽 대응을 불법이라고 결론 내렸음에도 불구, 경찰이 이러한 사법부의 판단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권분립이 무너진 독재국가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범국민대회’가 열렸던 지난 30일 저녁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는 SNS를 통해 “경찰이 차벽을 쌓기 위해 행사 차량과 발전기 차량을 견인하고 있다. 법적 근거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묵묵부답”이라며 “서울지방경찰청의 직접 지시라는 말만 되뇐다. 견인이 아니라 강탈이다. 법치주의가 유린당하고 있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올리고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1일 경찰청 관계자는 이처럼 시위대 주변을 차벽으로 둘러싸는 이유에 대해 “폴리스라인의 의미도 있고, 도로 점거 등 긴박한 상황이 오거나 불법행위 하려고 할 때 예방하는 차단의 수단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순 예방차원이라고 하기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경찰의 차벽은 시위대를 일반 시민들로부터 격리시키고, 그럼으로써 시위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다.
광화문 세월호 농성 현장에서 자원봉사 중인 장승회(35) 씨는 “경찰 병력이 광화문 지하철역 통로 앞까지 다 막아버려 화장실도 가기 힘들었던 적이 있다”며 “경찰 버스의 공회전도 문제다. 하루 종일 차량의 시동을 걸어놓고 에어컨을 틀어놓은 채 경찰들이 버스 안에 앉아 있다. 이 버스에서 나오는 매연 때문에 냄새가 심하고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고 했다. 광화문에서 구두방을 운영하는 장모(67) 씨는 “경찰 차벽이 버스정류장은 물론 택시정류장까지 꽉 막아버려 불편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니다. 경찰 병력이 세수하고 용변을 보느라 주변 건물 화장실에도 난리가 난다. 진정을 넣어도 도무지 해결이 안 된다”고 했다.
경찰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차벽은 시위대 안팎에 심리적으로 ‘장벽’과 같은 압박 효과를 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줄지어 늘어선 경찰 차벽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시위대는 외부로부터 차단됐다는 ‘고립감’을 갖게 된다. 더불어 바깥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차벽 때문에 보이지 않는 차벽 안의 시위대를 생각하기보다 ‘철통 같이 막는 강고한 권력’이라는 연상을 갖게 돼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차벽뿐만 아니라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불법적인 행태를 일삼고 있다는 제보가 SNS와 인터넷에 잇따라 반감은 높아지고 있다. A 씨는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지난 28일 “어제인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이라 미술관 관람을 하려고 광화문에서 대림미술관으로 가던 중, 길을 막고 있던 의경들이 갑자기 내 앞을 둘러싸며 못 가게 막고 ‘어디 가시냐’ ‘어디 갤러리 가시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왜 묻느냐고 반문했더니 ‘혹시 시위 참가자일까봐 묻는다’라고 말했다. 시위 참가자면 막는 건가. 이게 정상인가”라고 적었다. B 씨는 “지난 8월 청와대 앞 청운동을 다녀왔는데 시위 현장 주변에 경찰이 골목 골목 길을 막아 놓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은 경찰이 길을 막아 집을 코 앞에 두고 못 가더라. 한 여중생은 엄마에게 전화해 길을 막아 집에 못 간다고 울먹이는 것도 봤다. 청운동 주민이라고 민증을 흔들며 보내달라고 소리치는 주민도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라고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청하며 농성중인 세월호 희생자가족들 주변으로 경찰버스가 둘러져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
사법부 판단에 따르면 경찰 차벽 등으로 인한 통행의 제한은 명백한 불법이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2009년 6월 3일 경찰이 서울 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 시민 통행을 막은 것을 두고,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 내렸다. 헌재는 “극단적인 조치로 국민의 기본권인 행동의 자유권을 침해한 것이고, 불법집회 가능성이 있다 해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적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헌재의 판단을 거론하며 “경찰 차벽은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 삼권분립이 무너진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심각한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찰이 공무를 집행할 땐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또 자기들 권한 내에서 공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차벽을 둘러 합법적 시위를 봉쇄하는 건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고 어떠한 권한도 부여받지 않은 행위”라고 했다. 그는 “행정부 소속 경찰청장이 잘못하고 있다면 그 지휘 책임을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물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경찰의 차벽은 정확히 대통령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민들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지만 경찰은 “불법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윤철규 경찰청 경비국장은 “헌재가 판단한 2009년 서울 광장 차벽은 소위 말해 사람들이 통행할 수 없도록 완전히 둘러싸서 그게 문제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통행할 수 있게 횡단보도 등에 이른바 ‘숨구멍’을 만들어서 막는다. 그것은 괜찮다. 헌재의 결정 내용이 그렇다”고 했다. 이어 “차벽을 치는 이유는 불법행위를 예방하는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은 군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5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폭력 시위는커녕 평화적이고 차분한 천주교 단식기도회가 열렸다. 경찰은 당시 기도회 중에도 차벽으로 이들을 빙 둘러쌌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 제2항과 제6조 제1항에 따르면 “소요 사태의 진압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나, 범죄 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만 경찰은 차벽 등을 통해 시민들의 통행에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경찰 차벽의 불법ㆍ합법 논란에 대해 헌법재판소 임성희 공보심의관은 “경찰 차벽 문제는 단순히 차벽에 ‘숨구멍’을 만들어놓았다고 합법이고, 차벽으로 완전히 틀어막았다고 불법인,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각각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이어 “세월호 시위대를 차벽으로 둘러싸는 경찰의 행위 자체가 그 상황에 걸맞은 공권력의 행사였는지부터 따져보아야 한다”며 “만약에 2009년 6월 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와 지금 상황이 유사하다면 당연히 지금 경찰의 차벽은 불법 행위”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홍보심의관실 정영주 서기관은 “어떤 사안에 대해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면 국민과 전 국가기관이 이를 따라야 한다”며 “만약 국가기관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강제적으로 따르게 할 강제적 수단이 헌재에게는 없다. 헌재의 판단을 어긴 경찰의 차벽 때문에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다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는 방법, 그리고 국민과 언론의 비판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남 관동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경찰이 인력(人力)으로 다 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 차량을 이용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법에서 허용하는 이상으로 과도하게 시위를 막아서는 안 된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들이 해야 하는 업무의 근본 목적은 시위대가 안전하게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