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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로의 사회학] 딥스로트(Deep Throat) 선언한 1020 vs 사일런스(silence)에 빠진 4050…우리시대의 이중성
[헤럴드경제=서지혜ㆍ박혜림 기자] IT기업에 다니는 20대 직장인 A 씨는 요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마트폰으로 회사 익명게시판에 접속한다. 게시판엔 최근 있었던 연봉협상에서부터 회사 건물의 업무환경, 회의 때 나왔던 경영진의 발언까지 회사에 대한 ‘뒷담화’가 가득하다. 이 익명게시판은 회사가 직접 개설한 사내 인트라넷과 달리 독립된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업체에 직원들이 직접 신청해 개설된 게시판이다. 신변이 노출될 위험도 없는만큼 경영진에 대한 민감한 주제도 가감없이 다룬다. A 씨는 “외부 업체에서 만든 게시판이라서 중요한 내용이 회사 밖으로 새어나갈 수 있는만큼 경영진도 눈여겨보는 것 같다”며 “실제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을 업무환경에 반영해준 적도 있다”고 했다.

반면 대기업 부장으로 재직 중인 50대 직장인 B 씨는 요즘 직원들의 SNS 활동이 못마땅하다. 회사 계열사에서 발생하는 각종 안전사고 등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외부에 노출되면서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고 사내에서 보상 등을 알아서 처리하는데 외부로 노출될 경우 문제가 더욱 커진다”는 게 B 부장의 생각이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내외 익명게시판이나 기업평가 사이트 등을 활용해 자사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하는 ‘신종 내부고발’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외비’라는 이유로 사내에서만 은밀히 논의되던 연봉협상, 승진기회, 복지, 사내문화 등이 회사 밖 ‘공론장’에서 폭로되며 신(新)고발 문화를 공론화하고, 기업 내 민주주의를 이끄는 ‘딥스로트(Deep Throatㆍ내부 고발자)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중견급 직원들의 경우 여전히 이같은 새로운 내부고발 현상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세대 간 단절은 명확해 부인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 사회 폭로 문화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군대 내 폭행과 사망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젊은층의 딥스로트와 기성세대의 사일런스(침묵ㆍsilence) 현상은 세대간 이질성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적 차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세대간 진실규명 욕구에 대한 미스매칭이 사회 화합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젊은이들의 폭로는 다양한 창구를 통해 나타난다. 기업평가 사이트인 ‘잡플래닛’은 익명으로 자신이 현재 다니는 직장이나 전직장의 업무, 승진기회, 복지 및 급여, 업무와 삶의 균형, 사내문화 등을 평가하게 한다. 운영업체는 이러한 평가를 취합해 기업정보를 원하는 구직자들에게 공개한다. 실제로 ‘닥취’, ‘취뽀’ 등 온라인 구직자 커뮤니티에서 최근 잡플래닛은 취업희망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는 객관적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 경영진은 지난해 말 공기청정기 수백 대를 모든 사무실에 배치했다. 실내 공기가 너무 탁하고 덥다는 직원들의 건의사항 때문이었다. 경영진이 직원들의 의견을 들은 창구는 ‘팀블라인드’라는 앱 개발업체가 개설한 익명게시판. 사내 1000여명의 직원이 가입돼 있는 이 게시판에는 단순한 사내 건의사항에서부터 연봉, 경영진의 태도 등 민감한 문제까지도 자유롭게 논의되는만큼 경영진 역시 이 게시판을 수시로 체크하며 직원들의 생각을 눈여겨 보고 있다.

젊은이들의 내부고발 문화가 유행한 건 처음은 아니다. 최근 2년간 트위터를 통해 ‘대나무숲’, ‘꿀위키’ 등 다양한 이름으로 SNS를 통한 기업 내부고발이 유행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정 업체가 이런 정보를 직접 취합해 공론화시켜주는 대가로 수익사업으로 연결할 정도로 ‘폭로’가 대중화되고 있다는 게 최근의 특징이다.

하지만 4050세대에게는 이런 폭로문화가 달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수십 년 몸담은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단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모 기업 홍보담당자는 “정확한 정보와 부정확한 정보 혹은 감정적인 글들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오로지 기업의 몫”이라며 “기업의 이미지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만큼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의 재무나 기업상태 등이 투명하게 전달되는 사회적 공시의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과도한 정보 홍수 중에 불확실한 정보도 범람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며 ”이런 문화가 스스로 자정 능력을 갖춰 SNS 문화의 이상적인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gyelove@heraldcorp.com



▶우리 사회에서의 대표적 폭로 사례

폭로자/연도/폭로대상/폭로 내용

황적준 박사/1987년/경찰의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당시 고 박종철의 시신을 부검한 황 박사가 박종철의 사인이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임을 폭로. 이로 인해 경찰이 박종철에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자행했음이 드러남

윤석양 이병/1990년/육군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민간인 사찰/육군 보안사가 정치ㆍ노동ㆍ종교ㆍ재야계 등 각계 주요인사와 민간인을 상대로 정치 사찰을 벌인 사실 폭로

박계동 의원/1993년/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박계동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노 전 대통령이 신한은행에 예치해둔 비자금 폭로

류영준 교수/2005년/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배아 줄기세포 연구 논문의 조작 사실, 난자 불법 매매 행위 등을 밝힘

김용철 변호사/2007년/삼성 비자금 문제/삼성그룹의 전직 법무팀장이던 김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50여억원을 자신이 관리했음은 물론 검찰 및 시민단체에 대한 로비를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폭로

고(故) 장자연/2009년/재계 및 언론계 인사 성접대/장 씨가 생전에 작성한 자필 문건을 통해 소속사 대표에 의해 재계 및 언론계 인사들에게 매일 성상납, 술접대, 골프접대 등을 강요당했다고 밝힘

김 상병/2014년/윤일병 사망 사건/이 병장을 비롯한 의무병들이 윤 일병을 수 차례 폭행,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을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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