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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칼럼-박재식> 금융보신주의, 이대로는 안된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죄악시했기 때문에 금융업자들은 항상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보면 당대를 풍미하던 피렌체 고리대금업자들이 뜨거운 불길로 고통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악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당시 세간의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렌체에서 싹을 틔운 은행제도는 이후 네덜란드, 영국 등으로 전파되어 국가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베니스도 유대인 금융업자들의 상업신용에 힘입어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화려하게 꽃 필 수 있었다. 이들 국가가 국운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금융이 실물경제에 자금을 충분히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 중개를 거치면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됐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를 지낸 프레드릭 미시킨(Frederic Mishkin)도 “금융제도는 경제활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본할당 조정 장치로, 기업이나 가계가 자본을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하도록 해준다”고 했다.

그간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산업자금의 공급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실물경제 발전을 뒷받침해왔다. 1960~70년대 정부는 금융을 통해 당시로선 전망이 불투명했던 조선, 철강, 전자 등의 산업분야에 진출해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낼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 금융산업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 부실을 떠안으면서 1997년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으나, 위기 이후 고강도 구조조정, 인수ㆍ합병을 통한 대형화 추진, 리스크관리시스템 및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선진국형 금융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아직 우리 금융의 위치를 보면 ‘자원을 생산적으로 배분하는 경제의 두뇌’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담보와 보증 등 안전대출 위주로 영업하면서 ‘비올 때 우산을 뺏는’ 보신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탓에 혁신적인 유망 중소기업에는 자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 이미 우리 기업들의 사업영역은 글로벌화돼 있으나 아직도 여전히 국내에 안주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영업방식도 계속되고 있다.

향후 경제 패러다임이 요소투입 중심에서 창의와 혁신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실물경제를 제대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금융중개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즉 기존의 보수적인 대출관행을 기술평가나 투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통해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리스크를 정확히 평가하고 적정한 리스크를 부담하여 수익을 창출해 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성과에 대해 충분히 보상해주고 잘못되더라도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는 등 보수와 면책관련 평가 체계 등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금융산업은 그 자체로도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는 핵심 서비스업인만큼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당국과 우리 금융인들의 투철한 사명감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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