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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 참여 · 자율 ‘삼박자’ 이뤄야 진정한 공동체”
연중기획 '사회자본'〈social capital〉 확충해야 4만$ 가능하다 <4>나를 넘어 공동체로-좌담회 본지·현대경제硏 공동기획
혈연·지연·학연은 우리민족의 자산
‘부정부패·정실주의와 동일시 말아야

‘구성원 스스로 참여 함께 결정
‘개인·지역·사회 가치 하나로 일치
‘새마을운동은 공동체 성공 본보기

‘성미산 마을’·‘통두레 공동체’ 등
‘탄탄한 자생력에 행복·만족도 높아

요즘같이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어수선할수록‘ 사회자본(social capital)’ 확충 등 경제구조를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는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자본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국가 중 29위에 불과하다. 특히 사회자본 구성 요소 중 공동체 내의 타인에 대한 신뢰, 배려 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 공동체 의식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헤럴드경제는 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마련한 연중 기획‘ 사회자본 확충해야 4만 달러 가능하다’의 네 번째 순서로‘ 나를 넘어 공동체로’라는 주제의 좌담회를 갖고 공동체의식 회복을 위한 해법을 모색해 보았다.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사회자)= 사회자본의 정의, 경제주체의 역할, 공적 신뢰 제고 방안에 이어 공동체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사회자본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활성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방안은 뭘까요.

▶정재근 안전행정부 지방행정실 실장= ‘방안’을 알기 위해서는 ‘현황’ 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지방자치를 시작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지방자치가 공동체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는 말 그대로 주민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고 운영해나가는 건데 그동안 중앙에 너무 예속돼 왔습니다. 예산, 국가업무, 조직권을 얼마나 가져가느냐에 만 집중한 겁니다. 예산을 지원해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지어주는 게 지방자치의 확대라고 본 거죠. 그러다보니 지역공동체는 없고 지역자치단체장과 공무원 조직만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연중기획 네번째 좌담회 참석자(왼쪽부터)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정재근 안전행정부 지방행정실장, 기영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장

▶하 원장=공감합니다. 우리 지방자치는 하드웨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구성원인 주민들이 전혀 행복하지 않죠.

▶기영화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원장=맞습니다. 현장을 돌아보면 본래 취지 자체를 잃어버린 공동체를 많이 봅니다. 주민이 원하고 주민 스스로 협의해 결정하는 것이 아닌, 예산 따오기에 혈안이 되면서 결국 일부 구성원의 잇속 채우기로 전략한 겁니다.

▶정 실장=정부에서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그 부분입니다. 예산은 지원하는데 혜택은 일부에만 가고 자생력은 키워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이론적으로 보면, 우리사회는 혈연ㆍ 지연ㆍ학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합니다. 부정부패, 정실주의 최근엔 ‘관피아’ 논란까지 불거지며 사람관계에 따른 신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어느 때보다 강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가장 투명하고 청렴하다고 평가되는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를 보면 우리보다 훨씬 강한 사람 관계에 의한 신뢰가 사회를 움직입니다. 개인친분을 통한 민원해결과 정치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청렴한 건 그 과정 자체가 투명하기 때문이죠. 바로 이게 포인트 입니다. 사람 관계에 의한 문제는 그 문제 자체로 풀어야합니다. 혈연·지연·학연 등 관계에 따른 신뢰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입니다.

▶정 실장=맞습니다. 그런 풍조 때문에 나타나는 한국사회만의 특징도 있지 않습니까. 다른 나라는 동네 놀이터 그네 줄이 끊어지면 설치업자가 누군지,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는데 우리나라는 바로 동장한테 쫓아가죠. 개인과 국가를 잇는 공동체가 미약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류 교수=제도에 대한 신뢰가 강한 서구에서도 고민이 많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개인주의가 너무 심해 공동체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요즘 미국 젊은이들은 혼자 볼링을 치러 갈 정도랍니다. 참여민주주의의 근간인 이웃ㆍ친족ㆍ친구 공동체가 흔들린 결과입니다. 여기에 비춰볼 때 유달리 강한 우리사회의 혈연ㆍ지연ㆍ학연은 공동체 붕괴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우리 민족의 귀한 자산입니다.

▶기 원장=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같은 공동체도 흔치 않습니다. 어떤 선진 모델, 우수한 모델을 가져와도 이식하기 쉽지 않습니다. 단기간에 급속한 발전을 이루면서 독특한 모습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하 원장=우리나라는 공동체 기반이 취약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취약한 공동체를 어떻게 하면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요.

▶류 교수=부정부패, 정실주의, 폐쇄주의와 혈연ㆍ지연ㆍ학연 등 사람에 대한 신뢰를 동일시하는 사회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조사를 해보면 어느 사회나 취약계층을 돕는 1차 조력자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통한 복지가 최근 가장 화두인 ‘복지사회’ 건설에 최우선 순위란 얘깁니다.

▶하 원장=너무 사람에 대한 신뢰만 강조되는 건 아닌가요.

▶류 교수=그렇지 않습니다. 사람, 관계에 의한 신뢰 자체가 부정되는 걸 우려하는 겁니다. 제도에 의한 신뢰 구축도 중요합니다만 제도보다 사람, 관계에 의한 신뢰 구축이 공동체 형성과 발전에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강조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예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새마을운동’입니다. 제도와 사람, 관계 이 모든 요소가 잘 접목된 사례죠. 조선시대 향약부터 조선후기 일본식 농촌 조직 요소까지 역사 속 축적된 공동체 역량이 총망라돼 있습니다. 개인ㆍ 지역ㆍ사회의 가치가 하나로 일치돼 더욱 시너지 효과가 컸던 겁니다.

▶기 원장=적극 공감합니다. 당시 새마을운동은 여권신장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죠. 반드시 남자 지도자 한명에 여자 지도자도 한명 뽑아 균형 있는 공동체 구성의 기반을 갖췄습니다.

▶정 실장=새마을운동은 구성원 스스로 참여해 결정하고 함께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가야할 공동체 활성화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정부도 이런 방향의 새로운 공동체 활성화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양만 공동체인 주민자치위원회와는 근본이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주민들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자생력도 생길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 원장=모두가 참여하면 가장 좋지만 현재 행정구역 단위상 많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정 실장=맞습니다. 그래서 그 규모를 줄여 내실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정부의 목표입니다. 전국 4000여개 주민자치위원회 중 31곳을 골라 주민자치회를 시범 운영 중에 있습니다. 일부 예산을 주되 그 예산을 어떻게 사용하고 운영할지 주민 스스로 정하고 고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연말까지 운영해본 뒤 성공여부에 따라 지방자치법도 개정할 방침입니다.

▶기 원장=무엇보다 지역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행복을 느끼고 만족도가 높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지역 공동체는 제도와 사람에 대한 신뢰구축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고민해야 할 점은 두 요소 간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커뮤니티’가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까진 지역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가 주된 형태지만 앞으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커뮤니티가 등장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중심이 될 겁니다. 무엇이 공동체를 위한 것인지 공통의 지향점을 찾아 교육과 학습을 통해 고민하고 함께 이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공동체 참여로 인한 효과가 나면 다시 참여확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 실장=공동체만의 특성도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바람직한 모델에 끼워 맞추기보다 지역, 종교, 취미 등 다양한 공동체가 존재해야 사회가 균형 있고 건강해집니다.

▶하 원장=구체적인 케이스가 있을까요.

▶기 원장=지역 공동체 두 곳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과 인천 남구의 ‘통두레 공동체’ 입니다. 이 두 곳은 사람이 중심이 된 공동체로 참여와 자율적 결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두 곳 다 서민동네지만 행복도와 만족도는 부촌인 서울 강남구만큼 높습니다. 성미산마을의 경우 외부지원이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자생력도 갖췄습니다.

▶하 원장=갑자기 모든 공동체 활성화가 사회자본 확충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영화 ‘위트니스’에 나오는 ‘아미쉬(amish)마을’ 주민들은 모든 문명을 거부하고 세금도 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가치개념에 따라 삽니다. 과연 이런 공동체도 인정해줘야 하는 걸까요.

▶정 실장=굉장히 중요한 얘깁니다. 지역공동체 발전은 개인ㆍ국가 발전과 같이 가야 한다는 점이 전제돼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살고 싶다’는 폐쇄적 집단주의는 되레 사회자본을 깎아먹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 원장=일부 병리현상도 있지만 아직 우리 지역공동체는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DNA안에는 유대 본능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합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뼛속부터 사회적 자본을 담고 있는 셈이죠.

▶하 원장=지역 공동체에서 신뢰를 쌓는 방법과 그 신뢰를 국가와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류 교수=‘일반화된 호혜성’이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한 말인데 ‘기업이 잘 되는 게 내가 잘되는 것이고 내가 잘되는 게 국가가 잘되는 것”이란 표현에 이 뜻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공동체 내부 협력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바깥으로 나가는 연결고리가 있어야 합니다.

▶정 실장=주민 개개인의 능력을 키우면 공동체는 더 활성화 될 수 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 하면서 배우도록 하는 겁니다.

▶기 원장=신뢰가 쌓이려면 원칙이 바로 서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되면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구성원 스스로 원칙을 지키려하기 때문에 신뢰는 자연스레 쌓일 수 있습니다.

정리=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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