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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 “음식은 소통…한식 세계화 꿈꾸죠”
- 대한민국 조리명인, 고재길 아워홈 수석조리부장
 발효콩조림등 연구…화려한 수상경력
개발메뉴 재능기부…한식홍보 힘쓸터


요리 경력 37년 주방장의 서류가방에는 뜻밖에도 모퉁이가 다 닳아 헤진 조리기사 수험서가 들어있었다. 책장마다 빼곡히 그어놓은 밑줄에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은 걸요.” 지난 15일 서울 강남의 아워홈 본사에서 만난 대한민국 조리명인, 고재길(64·사진) 아워홈 수석조리부장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올해 산업포장을 받은 것을 비롯해 각종 대통령상, 조리협회상, 국외 표창 등 수많은 상을 휩쓴 고 부장이 요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7년. 어머니는 그가 공무원이 되길 바랐지만, 그의 꿈은 주방에 있었다. “웨스틴조선호텔을 무작정 찾아가 문을 두드렸죠. 요리를 하고 싶다는 열정에 앞뒤 가리지를 않았어요.”

다행히 호텔 주방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제대로 된 요리가 저절로 배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채소다듬기 같은 허드렛일만 주어졌다. “당시 특급호텔 주방장들은 전부 외국인이었는데, 말도 잘 안 통하는 제게 요리 비법을 쉽게 가르쳐줄 리 없잖아요.” 

고 부장은 외국인 조리사들이 쓰고 버린 레시피를 찾으려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에 다시 꼼꼼히 옮겨 적고 밤 새워 주방에 들어가 연습했다. 그는 그 시절 영어로 적은 레시피 노트를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고 부장은 요즘에도 요리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틈만 나면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한다.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찍은 사진은 휴대폰에 저장된 것만 4200장이 넘었다. 그는 자신의 성실함이 즐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세상에 또 있나요.”

그러면서도 고 부장은 자신을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아’라고 칭했다. “전 경쟁자가 별로 없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경쟁이 심해서 요리 실력은 물론이고 영어까지 출중해도 주방장 되기가 쉽지 않아요. 결국 한자리뿐인 주방장 자리를 잡지 못해서 구조조정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죠.”

계층을 올라가는 사다리가 걷어차인 시대, 고 부장은 재능기부를 통해 후학들을 끌어올려주고 있다.

발효콩조림 제조방법, 김치 숙성을 위한 혼합 유산균 배양액 조성물, 복분자가 함유된 소시지 제조방법 등 자신이 개발한 조리분야 특허권과 400여건의 개발 메뉴를 공개한 것. “특허는 자기 혼자만의 기술을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 울타리를 치는 거잖아요.” 고 부장은 그 뒤의 말을 아끼며 겸손을 표현했다.

그런 그에게도 아직 이루지 못한 바람이 있다. 바로 한식을 세계화하는 것. 그는 세계 각국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차린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를 언급하며 “음식은 한 나라를 알리는 훌륭한 문화 아이템이에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식을 통해 전 세계에 우리나라 음식 문화를 전파하고 싶죠”라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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