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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슬픔에 잠긴 안산…그러나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합동 분향소 조문객 갈수록 줄고
“경기가 안 살아난다” 일부푸념속…“희생자 위해 고통 감내” 목소리도
단원고엔 ‘희망 꽃말’ 이 자리잡고…생존 학생들도 차츰 정상 생활로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는 한없이 침잠돼 있었다.

“세월호 사고 난 뒤로 안산은 죽음의 도시나 마찬가지에요.”

21일 무더운 날씨에 거리를 오가는 인적마저 드물어 한 택시기사는 탄식조로 안산의 분위기를 이같이 전달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상복을 차려입은 조문객이 하루 평균 1만명이 훌쩍 넘게 안산의 정부합동분향소를 찾곤 했지만 이제 도시 곳곳에는 적막만 감돈다. 일일 조문객도 500여명에 불과하다. 고잔역 앞 정부합동분향소행 30인승 버스에는 빈 자리가 유독 많았다.

세월호가 남긴 상처는 현재 진행형이다. 안산의 민심은 갈라지기 직전의 나무처럼 바짝 메말라 있다. 애도 기간이 길어지며 주민들의 불만도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회식조차 자제하며 슬픔을 나누려 하고 있지만, 일부 상인들은 “세월호 가족들이 너무 그러니 우리가 죽겠다”,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아우성이다.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올랐다가 세월호 참사를 겪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이 학교 옆 화단에 놓인 화분 중 ‘메리골드’의 꽃말,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란 문구가 학생들의 바람을 담은 듯 시선을 사로잡는다 (왼쪽 사진). 21일 오후 1시께 방문한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자리한 정부합동분향소. 인산인해를 이루던 조문객들 행렬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화랑유원지에서 만난 주민은 “주민들 가운데서도 ‘빨리 분향소를 철거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주민은 “솔직히 석달이 넘었는데 이젠 좀 짜증스러울 정도”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세월호가 희생자 가족들에게 남긴 깊은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생채기를 낸다는 시각도 나오지만 이를 탓할 수는 없어 보인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생떼를 쓴다느니 일부 몰지각한 보수단체들은 희생자 가족에게 대못을 박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 같은 주민 반응에 대해 회사원 김모(34) 씨는 “아직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조사도,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가 어떻다 이런 말은 제발 자제했으면 좋겠다.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에 비할 바도 아니잖냐”고 했다.

유가족들은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직도 유가족들은 서로 인사를 나눌 때면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참척의 고통을 겪고도 어찌 올곧게 세월을 견딜 수 있을까. 서로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식사는 하셨어요’, ‘이제 나오셨어요’라는 식으로 인사를 나눈다. 한 유가족은 “아직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지도 않았다. 자식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으라 하냐”며 울분을 토했다.

살아남은 학생의 부모도 자식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단원고 생존자 학생 78명의 부모 가운데 20여명은 아직도 자식 걱정에 매일같이 등하교길을 함께 하고 있다. 학교 측에선 학부모 대기실까지 마련해줬다. 그들에게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 돌아온 자식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들과 매한가지다.

부모의 우려에도 생존 학생들은 더디지만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학생들은 아직도 자신들은 “구조된 게 아니라 탈출해 나왔다”고 말한다.

치료부터 교육 프로그램까지 많은 부분들을 어른들의 개입 없이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지난 15일 실시한 국회 도보 행진도 생존 학생들끼리 논의해 결정한 사안이다.

양승필 단원고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은 “지켜보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 친구들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이라며 “비록 친구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남아 있지만,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자생력이 심어진 것과 다름 없다”고 했다.

양 위원의 말을 방증이라도 하듯, 단원고 앞 화단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추모의 포스트잇과 편지들은 49재 이후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 자리를 빨갛고 노란 꽃들이 채우고 있다. 꽃 사이 꽂힌 팻말에 쓰인 “메리골드의 꽃말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우리는 아직 잊지 않고 있어요”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안산=박혜림 기자/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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