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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100일,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안산 트라우마센터 직원 “슬픔은 극복하고 분노는 기억해야”
[헤럴드경제=김기훈ㆍ박혜림 기자] “현재로서는 정신적 돌봄보다 신체적 돌봄이 우선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희생자 가족과 안산시민의 치유와 회복을 돕고 있는 안산 트라우마 센터의 안성미(가명ㆍ40) 씨는 정신적 외상이 남긴 신체적 이상 징후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희생자 가족들은 단 하루도 온전히 잠들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잠못 이루는 밤을, 악몽에 시달리는 밤을 견뎌내기 위해 술ㆍ담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많았고 그만큼 당 수치와 혈압이 굉장히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또 불규칙한 식사와 영양부족으로 잇몸과 치아 상태도 나빠졌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는 심리 치료가 섣불리 진행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끄집어냈다. 차마 희생자 가족들에게 “안녕하시냐”고 인사할 수 없어서 “식사는 하셨냐”고 말이라도 건네면 “식사를 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따끔하게 되받아치는 분들도 있었다는 것. 세월호 침몰 후 구조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총체적 부실과 무능은 공무원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하지만 끊임없는 접촉과 대화로 마음을 여는 이들도 많았다. 매번 화를 내던 한 가족은 어느 날 한 심리 치료자에게 “그럼 우리 밥이나 먹어!”라며 소리쳤다고 한다. 목소리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지만 밥을 먹자는 말 자체가 관계형성이 이뤄졌다는 방증이라는 게 그의 분석.

이렇게 차근차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희생자 가족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게 심리 지원의 현실이다. 그는 또 “사람들이 심리 상담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 하지만, 이는 정말 속 모르는 소리”라며 “더디더라도 한발 한발 접근해 나가는 게 진정한 심리지원”이라고 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농성 중인 가족들의 건강 상태도 걱정스럽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심신이 급격히 무내져 내린 상황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는 데 우려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 분들을 위해 현장에 지역사회팀을 보내 아프신 데는 없는 지 살피고 파악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 이 같은 활동이 정신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더 분노를 일으키는 분도 있을 거고,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지 않고 행동으로 이끌며 아이의 죽음을 의미화하는 분도 있다”고 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활동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의미 부여가 되면 되레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는 다만 그 과정을 건강하게 밟아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슬픔과 우울은 회복돼야 하고 분노는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분들과 함께 울어주고 웃어주고, 어울려야 하지만 이 모든 문제가 일어난 것에 대해선 다 함께 분노해야 한다”는 것이다.

슬픔에서 벗어나 정상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의식, 아이들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마음 속에 평생 간직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편 안 씨는 “치료자 관점에서 봤을 때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거부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아파하고 회복해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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