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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 라이프〕 세계 갑부들이 잠 못자는 이유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애들 학원 수강 과목을 늘려야 하나 줄여야 하나? 다음 학기 등록금은 또 어떻게 내나? 이번 휴가는 모처럼 가족들끼리 비행기 한번 타야 되나? 뱃살은 자꾸 두터워지는데 뭐라도 운동을 시작해야 하나? 지난번에 사둔 주식은 영 오를 기미가 없으니 손해 보더라도 지금 팔아야 하나? 나이는 점점 많아지고 모아둔 돈은 없고 회사 그만두면 뭐라도 해야 되는데 어쩌나. 전세는 치솟고 집값은 떨어지니 대출을 껴서라도 확 사버려?’

보통 사람들이야 잠 못 잘 이유는 많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걱정이다. 아예 덮어놓으면 몰라도, 결정하고 해결하자 마음 먹으면 며칠 밤을 샐 지 모른다.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보통 사람들 말고, 부족할 것 없는 부자들도 밤새 뜬 눈을 세우게 하는 고민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세금 신용 자산 관련 법률 자문을 전문으로 하는 영국계 다국적 로펌 위더스월드와이드가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 ‘21세기에서의 부의 의미’(The Meaning of Wealth in the 21st Century)에 따르면 다른 계층과는 다른 억만장자급 갑부들에게 특징적인 고민은자녀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학원비나 학교 성적, 대학 진학 등과 관련한 문제는 아니었다. 갑부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것은 부모가 가진 부로 인해 자녀들의 성취동기가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위더스월드와이드는 유럽과 아시아, 북미 지역의 개인 자산가 4500명을 설문 조사했으며, 이 중에는 개인 자산이 수천만에서 1억달러(1000억원여)에 이르는 ‘슈퍼 리치’ 16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가 포함됐다. 전체적으로는 개인자산 1000만달러(100억원여) 이하인 ‘중급 부자’(이하 ‘부자’)와 1000만달러 이상인 ‘갑부’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통계를 냈다.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부자들을 잠 못들게 하는 이유’라는 항목으로 던져진 “당신의 부와 가족의 미래를 생각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부자’와 갑부 모두 첫 손에 꼽은 것은 ‘나와 가족의 건강’이었다. ‘부자’ 중 37%, 갑부 중 36%가 건강이 가장 걱정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2위에서 두 그룹의 대답이 갈렸다.

두번째로 많은 ‘부자’들이 걱정거리로 꼽은 것은 ‘지금 있는 가족을 부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답한 반면, 갑부 응답자들의 답변 중에선 “내 자녀들의 성취 의지와 야망이 부족해질지도 모른다”가 2위를 차지했다. 자녀의 성취동기 결핍에 대한 두려움을 첫 손가락에 꼽은 비율은 갑부가 15%였던 반면에 ‘부자’들은 8%밖에 되지 않아 두배가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가족부양에 대한 걱정은 갑부들에게서 3순위(9%)였다.

건강-자녀-가족부양에 이어 갑부들을 잠 못들게 하는 두려움으로는 ‘내 투자가 실패할 수도 있다’(8%), ‘일 때문에 가족과의 유대를 잃을 수 있다’(7%), ‘내 자녀들이 성공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할 수 있다’(6%), ‘나나 내 가족이 돈을 너무 많이 쓸 수 있다’(6%), ‘결혼생활의 파경’(6%), ‘(자녀의 결혼ㆍ출산 등으로) 늘어나는 가족을 부양하지 못할 수 있다’(3%), ‘내가 지나치게 모험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2%) 등으로 나타났다.

갑부들이 두번째로 많이 꼽은 자녀의 성취 동기에 대한 걱정은 ‘부자’ 들에게선 투자 실패에 대한 우려(10%) 보다 낮게 나타나 4순위로 밀렸다.

요컨대 갑부와 부자들의 응답률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인 항목은 자녀의 성취동기 결핍 우려(갑부 15%, 부자 8%)였으며 그 다음이 가족부양 실패(갑부 9%, 부자 13%), 과도한 모험적 선택(갑부 2%, 부자 5%), 투자 실패 우려(갑부 8%, 부자 1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제외하고는 각 항목에서 응답률의 차이가 없거나 1%p에 불과했다.

16명의 슈퍼리치를 심층 면담한 위더스월드와드는 조사결과를 분석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의 갖가지 언어로 된 금언들에 따르면부자는 3대를 넘기 힘들다”며 “뻔한 경구지만 여전히 이 말들에는 일면의 진실이 있다”고 풀이했다. 첫 세대는 부의 창조자이며, 2대는 부의 보존ㆍ관리자들이지만, 3대는 이도 저도 아니고 뿔뿔이 갈려 재산 싸움이나 벌이다가 선대의 재산을 ‘말아 먹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갑부들은 이같은 도전과제를 넘어 3대 넘어 자자손손 부를 이어가려는 자신들만의 비결을 갖고 있다는 것이 위더스월드와이드의 진단이다. 그것은 “3대 파산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창조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 즉 후세대들이 (1세대와 마찬가지로) 능동적이고 진취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갑부들은 부를 얻기 위해선 손에 때를 묻혀야 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때로는 몇 주간이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비즈니스는 보상을 돌려줄 수 있지만, 늘 영광스러운 일은 아니다”라고 연구 보고서는 전했다.

그래서일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 빌 게이츠 부부는 58억달러나 되는 재산을 세 자녀에 상속하는 대신 사회에 환원하기로 공약했고,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자기 재산의 99%를 생전이나 사후 자선 목적으로 쓰기로 했다. 워렌 버핏의 재산 중 83%는 이미 빌 게이츠의 재단에 예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도 부모가 생전 쌓은 부가 자식들의 성취 동기를 빼앗을까봐 우려한 슈퍼리치들로는 이베이(eBay)의 설립자 피에르 오미다이어 회장과 기업인이자 전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세계 최고의 여성 갑부인 지나 라인하트 핸콕 프로스펙팅 회장, 건축자재 전문업체 홈 데포의 공동창립자 버나드 마커스가 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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