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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이 두려운 사람들 II] 택배기사 동행취재 “여름 휴가, 올해는 못갈거같아요. 여기를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서울 마포구 아현동 연립주택가. 한여름에도 이 언덕 마을의 좁은 골목을 매일같이 누비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택배 기사들. 서울의 수은주가 33도까지 오른 지난 11일. 이곳에서 뜨거운 여름을 나고 있는 택배기사 조춘제(48) 씨의 하루를 헤럴드경제가 동행취재했다.

조 씨의 일과는 아침 6시께 시작한다. 7시부터 집하장에서 그날 배송할 물건을 트럭에 싣고 담당구역인 아현동으로 간다. 좁고 비탈진 골목길에서 곡예하듯 간신히 트럭을 대고 뒷문을 연다. 큼직한 상자를 어깨에 짊어지고 잰걸음으로 배송지를 찾는다.

재정비 촉진구역으로 지정된 오래된 주택가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리 만무하다. 한달음에 5층까지 계단을 올라 문을 두드린다. 물건을 건네고는 쏜살같이 계단을 내려간다. 

뜨거운 뙤약볕도, 좁은 골목길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4,5층 건물도 무거운 상자를 짊어진 택배기사는 이겨내야한다. 본지 배두헌 기자가, ‘난코스’인 아현동을 담당하고 있는 택배기사 조춘제씨와 동행하며 그의 고단한 하루를 엿봤다. [사진=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원래 이렇게 쉴 틈없이 다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안하면 퇴근이 늦어져요”란 답변이 돌아온다. 한 집에 물건을 배송하고 돌아올 때마다 땡볕에 트럭 좌석이 금세 달아올라 엉덩이가 따끔하다. 금방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다 보니 에어컨도 소용이 없다며 아예 창문을 열고 다닌다.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나을까 싶었더니 비가 오면 운전이 더 힘들어져 시간이 오래 걸리고 퇴근이 늦어진다고 한다.

더 비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반대편에서 다른 회사의 택배 트럭이 다가온다. 후진을 해 길을 터주곤 스쳐 지나가며 둘이 손짓으로 인사를 한다. 아는 사람이냐 물으니 “그냥 같은 택배니깐….” 하고 주차를 한다. 그는 아무리 급해도 트럭 뒷문은 확실히 챙긴다. “문을 잘 안닫으면 물건을 도난당하기도 해요. 차키 꽂아둔 채로 좀 멀리 갔다가는 아예 차를 통째로 가져가는 일도 있어요.” 


점심도 대충 때우며 일하는 그가 배송을 마치는 시간은 보통 오후 9시. 물량이 많은 화요일엔 밤 11시가 돼야 하루가 끝난다.

“자취하는 대학생들이나, 서울 올라와서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에게 시골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김치나 그런것들 배달해줄 때 참 뿌듯하죠. 받으면 막 고맙다고, 수고하신다고 마실 거라도 한잔 주시고.” 이렇게 “고맙습니다.“ ”더운데 고생하시네요.” 말 한마디만 들어도 힘이 난다고 한다.

그런데 택배기사라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반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어르신들이 그러면 괜찮은데. 나이도 한참 젊은 사람들이….” 발짓으로 “아저씨, 여기”하는 고객들을 만날 때도 기분이 상한다고 한다.

마치 퀵서비스를 시킨 것처럼 “몇 시까지 가져와라. 안그러면 안받겠다”라는 고객들 이야기를 할 땐 표정이 어두워졌다.


매일 2만보에서 3만보 정도를 걷는다는 조 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17년차 베테랑이다. 몸이 이제는 젊을 때 같지 않고 허리가 조금씩 아프다는 그에게 여름휴가 내고 쉬어야겠다고 하니 “여긴 영업점에서 힘들다고 포기한 지역이라,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여름휴가는 못갈 것 같아요” 라며 웃는다.

‘택배기사가 이 시대의 산타클로스’ 라는 말이 있다 하니 그는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 명절에 선물배송이 많긴 하다”며 멋쩍은 미소를 띄었다. 땀을 닦은 조 씨는 누군가에겐 ‘선물’이 될 상자를 꺼내들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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