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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와 현재 · 자연과 도시…그의 붓에 잡힌 시공간의 찰나
中 신예작가 장잉난 ‘잊혀진 온도’展
서울 삼청동 갤러리스케이프서 내달 17일까지 첫 한국 개인전
현대인의 일상과 자연 전경의 결합 통해 인간의 소외 · 고독 그 너머의 세계 관조



사각으로 구획된 실내 공간의 창 밖으로는 멀리 산이 보인다(‘기억의 원점’, The Origin of Memory). 창이 나 있는 건물 옆 벽 뒤로는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잃어버린 시간’, Lost Time). 근경은 대개 인위적 건축물이거나 실내 공간이며, 원경은 나무나 숲, 또는 산이 이룬 자연이다. 원근이 뚜렷한 공간 속에 따뜻한 과거와 차가운 현재가 공존하고, 부드러운 곡선ㆍ열린 시야의 자연과 기계적인 선ㆍ폐쇄된 도시건물이 병치된다. 중국의 신예 작가 장잉난(張英楠ㆍ33)의 붓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과 자연과 도시의 공간을 찰나로 찍어내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하는 카메라 렌즈처럼 기능한다. ‘사진은 과거를 상상적으로 전유하는 방식’이며 태생적으로 사라져가는 것들, 특히 가족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는 수잔 손택의 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요새 대개의 젊은이들이 그렇듯 그는 일상적으로 사진을 찍고, 때로는 그 사진으로부터 작품을 출발시키며, 그의 많은 작품들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파란 벨벳’(Blue Velvet)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어린 시절 뛰놀던 숲과 산을 모티브로 했고, ‘산산조각난 포옹1’(Broken Embrace NO.1)에선 잠이 든 어린 아들을 꼭 껴안고 있는 젊은 아버지를 그렸다. 장잉난은 “군인이셨던 아버지께 어린 나에게 호되게 대하셨고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곤했다”며 “부자 관계가 점점 소원해졌다”고 했는데, ‘산산조각난 포옹’은 아버지와불화했던 자신에 대한 연민이자 보상인 셈이다. 그의 그림에서 피사체를 덮는 색은 온순하고, 경계를 이루는 선은 너그럽다. 그의 유화들이 연민과 향수의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그의 그림에서 그려지지 않았지만 읽혀지는 것은 중국 사회의 변화다.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에서 출발한 장잉난의 작품은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변화와 그 속도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응으로 확장된다. 

 
중국의 신예 작가 장잉난의 첫 한국 개인전 ‘잊혀진 온도’ 전이 오는 8월 17일까지 서울 삼청동 갤러리스케이프에서 열린다. [사진=윤병찬 기자 yoon4698@heraldcorp.com]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간은 제게 가장 관심이 큰 주제인데, 여기에 자연과 도시를 그리다보니 과거와 현재, 따뜻함과 차가움, 부드러운 선과 기계적인 이미지가 공존하게 됐고, 이러한 제 작품이 결국은 중국 사회와의 어떤 관계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중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것은 곧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의 욕망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과연 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과학기술의 지배력이 커지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요? ”

장잉난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서울 삼청동 갤러리스케이프에서 지난 9일부터 개인전을 열고 있다. ‘잊혀진 온도’(The Forgotten Temperature)라는 제목의 개인전엔 그의 최근작이자 대표작 12점이 내걸렸다. 중국 산시성(陝西省) 바오지(寶鷄) 태생인 장잉난은 지난 2005년 시안 미술 아카데미 유화과를 졸업했고, 지난 2009년 베이징 서밋 아트 스페이스와 아트미아 갤러리에서에서 두 차례의 중국 내 개인전을 가졌으며 9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한국 개인전 개막일인 9일 갤러리스케이프에서 만난 장잉난은 “20대엔 사회, 경제, 정치에 관심이 많았으나 30대로 들어서면서 내 내면에 더 집중하게 됐다”며 “재료에 종속되지 않고 내가 천착하는 의미와 주제를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이 첫 해외 개인전인 장잉난은 앞으로도 세계의 다양한 지역으로 발을 넓힐 계획도 갖고 있다. 

위장자(The Pretender), 유화, 100*80㎝, 2011

심소미 큐레이터는 “장잉난의 회화는 현대인의 일상적 풍경과 자연의 전경을 결합시켜 인간의 소외와 고독, 그리고 이를 초월하는 미지의 세계를 바라본다”며 “내면의 심상과 초현실적인 상황의 낯선 결합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와해시키며 관조와 표용의 시선을 유도한다”고 소개했다.

표제작인 ‘잊혀진 온도’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구도의 계단에 햇빛이 드러워지고 그 위에 누군가가 남겨놓은 조그만 파란 장갑 하나가 놓여진 장면을 담았다. 계단은 과거와 현재에 놓여진 삶의 궤적을 의미하고, 파란 장갑은 그 위에 남겨진 기억을 뜻한다. 장잉난은 푸른 색을 좋아한다고 밝혔으며, 작품 속에선 스스로를 지시하기도 하는데, 숲 속에 놓여진 파란 천(‘파란 벨벳’)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커다란 창 혹은 스크린에 빈 소파 두개가 덩그러니 놓여진 ‘아무도 갈채를 보내지 않는다’ (Nobody Applause), 상자를 뒤집어 쓴 사람이 바닷가 바위 위에 선 ‘위장자’(The Pretender) 등 소외와 상실, 허무, 고독 등의 상념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연민과 향수, 위로, 낙관의 정서가 이를 감싼다. 동트기 전의 어둠 속 빛을 그린 ‘뒤섞인 찬란한 빛’(The Glory of the Interwined)는 그의 세계에 근본적인 희망과 낙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다. 

뒤섞인 찬란한 빛(The Glory of the Interwined), 유화, 200*1150㎝, 2012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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