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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가 '납북자 카드’ 집착하는 세가지 이유
1. 등돌린 민심 수습책
2. 동북아 고립 타개책
3. 당총재 선거 필승책

아베 정치입문때 이슈화 사안…장기집권 위한 ‘정치 생명줄’ 로


“납치문제는 아베 정부에서 반드시 해결하겠다”

일본과 북한의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가 일본인 납치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베 총리에게 납치문제는 국내외 난국을 돌파할 다목적카드다. ▷집단적 자위권 강행으로 등을 돌린 민심을 수습하고 ▷동북아 고립을 타개할 외교전략이자 ▷내년 예정된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장기집권 발판이다. 사실상 아베 총리에게 납북 문제는 ‘정치 생명줄’인 셈이다.

▶납치문제 정치쟁점화 주역=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 해결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겨왔다. 아베 총리와 일본인 납치문제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88년 당시 중의원 의원이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의 비서로 일하면서 납치 문제를 처음 접했다.

아베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에서 1993년 초선 의원에 당선됐을 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정계에 입문한 아베는 일본 납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정치 이슈화하기 시작한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일본인 납치문제는 8차례 북일 교섭에서 단 한차례 언급될 만큼 핵심 쟁점이 아니었지만, 아베는 이를 국내 정치의 중대 현안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2006년 1차 내각 때 전 각료가 참여하는 ‘납치문제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1997년 ‘납치 피해자 가족모임’을 출범을 주도했다. 2002년에는 관방 부장관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동행하기도 했다. 이 때 북한과의 정상회담 직후 아베가 보여준 일본인 납북 문제에 대한 강경한 자세는 2006년 9월, 만 52세의 나이로 전후 최연소 총리에 당선되는 기폭제가 됐다. 당시 아베 선거전에서는 ‘요코타 메구미 마케팅’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됐다.

이후에도 아베 총리는 일본 납치 피해자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橫田惠ㆍ당시 13세)의 부모를 직접 만나고, 최근에는 국회에서 열린 메구미 사진전을 찾는 등 납치문제를 지속적으로 국민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지난달 10일 메구미 사진전에 참석한 아베는 “일본인 납북자의 전원 귀국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면전환용 전천후 카드=일본으로선 납북자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일본 경찰청 추산 납북 의심 실종자가 860명에 달하면서 일본 국민은 분노했고,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은 국가의 역할과 정체성을 가늠하는 핵심으로 부상했다.

아베 총리에게 납북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심으로 한 우경화와 함께 내부를 결집을 다지는 비장의 카드다.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을 변경한 지난 1일 베이징에서 북일 국장급 협상을 연 것도,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3일 대북제재 해제를 발표한 것도 이같은 의도와 무관치 않다.

집단적 자위권 강행 역풍을 맞은 아베가 ‘북풍’으로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과거사 문제와 영토분쟁으로 멀어진 한국과 중국 사이를 비집고 북한 틈새를 이용해 동북아 고립을 돌파해보겠다는 포석이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권이 대북제재를 해제한 배경에 “납북자 가족의 고령화 뿐만 아니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각의 결정에 대한 여론의 반발로 지지율 저하가 우려된 상황도 겹친다”고 꼬집었다. 아베 정권 지지율은 집단 자위권 강행 이후 견고하게 유지했던 50%선이 붕괴됐다.

납북자 문제 해결은 아베 장기집권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북한의 납북자 재조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4월께 일본에서는 통합지방선거가 치러지고, 9월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예정돼 있다. 조사 결과에서 납치문제가 진일보하게 되면 ‘납치 마케팅’의 달인인 아베의 장기독주는 굳어지게 된다.

그러나 일본 내부에서는 북한이 과거에 납치 문제 조사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전적을 근거로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핵을 가지고 있는 북한과의 접촉은 무리수가 따른다는 분석이다.

일본 납치피해자 가족들도 기대와 우려도 교차하고 있다. 1976년 사아타마 현에서 형(후지타 스스무ㆍ당시 19살)을 납치당한 타카시(56)는 “대북 제재 해제는 결과가 나온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며 “이번에야말로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경계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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