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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적으로 흥분한 남자가 지갑을 연다?…소비를 부추기는 뇌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1 한 여성의 뇌 앞쪽에서 고주파 베타파가 나왔다. 심장 박동은 분당 70회에서 120회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피부전도도 상승했는데 이는 교감신경이 각성됐음을 의미한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코카인을 흡입했을 때의 증상과 매우 유사한 이 반응은 피실험대상자으로서 머리에 센서를 장착한 여성이 아울렛에서 대폭 할인된 지미추의 하이힐을 발견했을 때 나타났다.

#2 19세기초 프랑스의 의사 가브리엘 보리외는 공개처형장 단두대에서 막 떨어진 죄수 ‘랑귀’의 머리에 대고 이름을 부르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이미 몸을 잃은 머리의 눈꺼풀이 서서히 자연스럽게 위로 들려올라갔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잠에서 깨거나 생각에 잠겼다가 정신을 차릴 때의 움직임과 같았다. 1960년대엔 미국 클리블랜드 시립병원의 신경외과 의사 로버트 화이트는 한 원숭위의 뇌를 꺼내 다른 원숭이의 순환계에 연결시키는 실험을 했다. 다른 개체의 뇌가 연결된 원숭이의 시선은 실험실 내의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였고, 입에 음식을 넣어주자 이를 씹었고 삼키려고까지 했다. 이로써 ‘목이 떨어지고 나서도 사형수의 뇌는 어느 정도 살아서 자신의 몸과 주위를 인식한다’는 오랜 가설이 힘을 얻었으며, 뇌만 살아남은 존재나 ‘뇌이식 수술’의 가능성도 공상과학물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3 컬럼비아대의 데이나 카니 박사 연구팀은 피실험대상자를 저자세 집단과 고자세 그룹으로 나누어 몸의 자세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했다. 저자세는 소심하고 방어적이며 복종적인 자세로 한쪽 다리를 다른 쪽에 엇갈리게 서 팔짱을 끼고 있거나 의자에 앉은 채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상태다. 고자세는 도전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로 이 그룹에 속한 피실험자들은 마치 회의에서 리더가 지시, 명령, 연설을할 때 취하는 동작처럼 탁자 위에 두 손을 짚고 서거나 의자에 등을 기대 앉고 다리를 뻗어 데스크 위에 걸쳤다. 두 집단 모두에게 60초 동안 같은 자세를 취하도록 한 후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에게 도박을 권하고 자신감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고자세그룹은 86%가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며, 저자세집단은 60%만 같은 응답을 했다. 두 집단의 타액을 비교해보니 고자세그룹이 지배 호르몬은 더 높고 스트레스 호르몬은 더 낮게 나왔다.

#4 쇼핑을 할 때 사람들은 왼쪽보다 오른쪽에 진열된 물건을 더 선호한다. 거의 법칙화한 이 행동경향을 ‘불변의 오른쪽’이라고 한다. 판매업자들은 사람들이 대부분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매장의 구조를 이들에게 맞게 만든다. 특히 매장에 처음 오는 소비자들이 오른쪽으로 돌 때 장바구니에 담을 가능성이 높은 저가 상품들을 진열해놓고 진로를 방해한다. 이렇게 진로를 방해하는 상품들은 소비자들 발걸음을 늦춰 더 많은 상품들에 눈길을 주도록 부추길 뿐만 아니라 고가 상품들이 진열된 방향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위의 사례는 소비자심리 전문가인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의 저서 ‘뇌를 훔치는 사람들’(홍지수 옮김, 청림출판)에 소개된 것들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책은 뇌활동과 소비행태간의 관련성을 ‘뉴로마케팅’으로 분석했다. 즉 소비자 심리와 행태 분석 및 마케팅에 쓰이고 있는 신경과학의 흐름과 핵심을 정리한 저서다.

뉴로마케팅이란 뇌파측정, 뇌스캔(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시선추적, 심장박동, 피부전도 등을 통해 소비자의 뇌활동 및 신체 변화를 분석해 마케팅에 적용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는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이나 선호도를 직접 밝히는 설문조사에 의존했던 과거의 마케팅 분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법이다. 즉 소비 충동은 의식 수준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차원, 즉 뇌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최근의 광고나 마케팅은 소비자의 뇌를 직접 ‘조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적인 가설이다.

위의 예시에서 보듯 책 전반에 걸쳐 실제 광고와 마케팅에서 뉴로마케팅 기법이 이용된 사례와 신경과학 실험 결과들을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신경과학 및 뇌과학에 대한 이론을 담고 있지만 쉽고 재미있게 읽혀진다. 일례로 왜 광고에서는 흔히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지에 대해서 ‘성적인 흥분을 한 남자들은 위험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를 증명한 실험으로 근거를 보여준다. 약간의 성적 뉘앙스가 담긴 여성의 친절한 응대가 거래를 어떻게 유리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실례를 통해 확인시켜준다. ‘무의식적이고 알아채기 힘든 스킨십’이 여성 구매자들에겐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겐 매출을 늘릴 수 있는 참고 자료가, 소비자들에겐 자신의 ‘충동’을 냉정하게 바라봄으로써 뇌를 조종하는마케팅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계기가 될 수 있는 저서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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