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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맥통한 官피아 척결…佛식 행정학교 도입을”
연중기획 '사회자복' 확충해야 4만$ 가능하다 <3> 공적신뢰도 높이려면 이렇게 하자-좌담회…본지 · 현대경제硏 공동기획
돈과 권력 눈치보는 사법부 신뢰 바닥…인기 영합 포퓰리즘 입법도 국민 불신
관료역할과 기능 재정립 시급…낙하산 전관예우 관행부터 뿌리 뽑고
국회 감시기구 만들어 국민에 알리고…로스쿨 같은 행정가 육성시설 설치를




논어(論語) 안연편에서 공자는 제경공(公)이 나라를 다스리는 원칙에 대해 묻자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라고 답했다. 나라의 존립 기반은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에 있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공공부분에 대한 불신 풍조가 최고조에 이르는 현실을 맞이하게 됐다.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의 3대 공적 주체들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다. 이에 헤럴드경제는 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마련한 연중 기획시리즈 ‘사회자본(social capital)확충해야 4만 달러 가능하다’의 세 번째 순서로 ‘공적신뢰도를 높이려면’이란 주제의 좌담회를 개최했다.


▶사회자=사회자본 확충을 위한 세 번째 토론입니다. 이 시간에는 그 중 가장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공적 신뢰 분야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입법, 사법, 행정 세 분야에서 어떻게 하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를 짚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원우 학장=우리나라는 공적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너무 낮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결국 원래하기로 했던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또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볼 필요도 있습니다. 일제에 맞서 저항했던 역사나, 독재에 대한 민주화 운동의 경험 등이 공적기구에 대한 권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권위 뿐 아니라 정당한 권위까지 무너뜨리는 결과가 초래된 겁니다. 또 압축성장 과정 속에서 제도적으론 선진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배후엔 전근대적인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위철환 회장=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국민들은 법원에 대해 돈과 권력이 있으면 면책을 해주거나 가볍게 처벌하고, 돈이 없고 백도 없으면 원칙대로 엄하게 처벌받는다는 불신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1988년 탈주범 지강헌 사건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 아닙니까. 재판제도에서도 극소수의 사건만 대법원에 올라가게 됩니다. 국민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법원에 상고하거든요. 그런데 2,3주 정도 지나면 상고절차 특례법에 의해서 기각한다는 말만 쓰여 있어요. 국민들 입장에선 기가 막힌 것이죠. 대법원에서 소장을 읽어보기나 했을까 의구심이 들고, 내가 힘이 없어서 유력한 변호사를 사지 못해서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도 있습니다. 현 제도론 대법관이 밤을 새워도 모든 사건 자료를 읽어볼 수가 없게 돼 있습니다.

▶이은재 원장=부정부패도 공적신뢰를 실추시키는 큰 요인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부패사고 신고건수는 2012년보다 33.5% 증가했다고 합니다. 또 지방자치단체장들 중 기소전력이 있는 사람들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회는 민주화, 투명화 된다고 하는데 부정부패는 확산되는 아이러니가 발생되고 있습니다.

▶위 회장=세계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대법관이 퇴임 후에 변호사를 개업하고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몽골과 같은 법률 후진국도 대법관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엔 개업을 못하게 돼 있다고 합니다.

▶이 학장=저는 그런 면에서 세월호 사고가 발생된 지금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사고 자체는 너무 끔찍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미안하다는 건 많은 이들이 어느 부문에선 조금씩 부패나 잘못에 가담해 왔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전 국민의 의식개혁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이자, 제도개혁도 병행하면서 한 단계 성숙된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회장=아동성범죄 등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중범죄에 대해 현실에 맞는 양형을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률구조도 개편돼야 합니다. 형사는 국선변호사 등의 제도가 비교적 잘 돼 있지만 민사 쪽은 아직 미비한 상황입니다.

▶이 학장=뉴욕은 원래 끔찍한 범죄도시였는데 블룸버그 시장이 취임한 뒤로 범죄와의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범죄율이 급감했습니다. 블룸버그 시장이 “교통법규 위반자를 단속 못하면 강력범죄도 단속할 수 없다”며 위법시 처벌에 대한 엄격성을 급격히 올려버렸기 때문입니다.

▶하 원장=일본에 가면 파란색 신호등에서 건널목을 건널 때 좌우를 살피는 사람은 백이면 백,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그냥 앞만 보고 건넙니다. 그만큼 교통신호를 믿는 겁니다.

▶이 학장=그렇습니다. 교차로 교통신호야말로 공적시스템에 대한 신뢰도의 상징입니다. 신호등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차라리 신호등이 없는 것이 낫습니다.

▶하 원장=법 위반에 대한 관대함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할지 선을 긋기 어렵기 때문에 작은 것부터 철저히 준수될 수 있도록 집행과 처벌에 있어서 수준을 엄격히 높이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두 분께서 사법부문의 현주소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행정 분야의 개혁 방향은 어떨까요.

▶이 원장=이번 세월호 사고의 근본 원인은 부처간 이기주의에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비정상적인 관행의 문제죠. 여기에 봐주기식 행정문화가 결국 이런 참사를 야기 시킨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을 뽑는 제도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엔 행정고시로만 뽑다 보니까 인성이나 열의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행시만을 굳이 고집할 게 아니라 일부는 민간에서도 영입하고, 사법에서 로스쿨을 도입한 것처럼 프랑스와 같이 행정학교를 만드는 방법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학장=행정관료제 개혁과 관련해서 ‘관피아’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관료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현재 고도화된 산업화 사회에서 관료가 어떤 역할을 따져보자는 겁니다. 우리 공무원들은 아직도 과거처럼 1980년대까지 해왔던 행정의 역할에 대한 로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공무원들이 사회를 주도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우리경제를 정부가 주도해서 창의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같은, 발전적인 미래를 창조하는데 국가가 주도한다는 것 자체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정부는 틀을 만들어주고 창의적인 일은 시장과 시민사회에서 할 수 있도록 맡겨줘야 합니다.

▶이 원장=물론 행시의 장점도 있긴 합니다만 고시 기수나 비(非)고시 출신에 대한 차별이 우선 심하다보니 엄격한 성과주의에 따른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철저히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하 원장=공직에 대한 근본부터 개조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사실, 입법시스템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시급한 과제인데요.

▶위 회장=국회에는 검토도 않고 입법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정작 의원은 모르고 보좌관만 아는 경우도 많죠. 또 표밭은 압력단체 입김에 좌우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고가 터지면 다른 법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입법도 개혁 대상입니다. 제3의 독립감시기구를 설치하거나 입법평가를 냉철하고 양심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가 단체를 만들어 백서를 발간해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고, 그런 분들은 책임도 지고 나중에 선거가 돌아왔을 때 유권자에게 알려주도록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연중기획 세번째 좌담회 참석자들. 이원우 학장, 이은재 원장, 위철환 회장, 하태형 원장(왼쪽부터).

▶이 학장=입법과정에서 당파적인 정당정치 구조 때문에 왜곡이 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결국 자기책임의 원칙을 강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의사결정의 주체가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지도록 하는 것이죠. 일부에선 입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서도 ‘이익형량의 원칙(여러 개의 권리 충돌 시 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함)’이 적용돼야 한다고 봅니다. 의회의 입법과정에서도 스스로 자율적 통제를 가능케 하는 매카니즘도 만들어야 합니다.

▶하 원장=관피아 등 전관예우 차원에서 관료들의 재취업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 학장=일본의 ‘아마쿠다리(天下)’나 프랑스의 ‘빵뚜플라쥬(pantouflage)’처럼 다른 선진국도 전직관료가 관련 분야로 재취업하는, 낙하산 문화가 있습니다. 능력과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재취업 자체를 근절하기보단 인맥을 악용해 결국 로비스트가 되는 관행을 막아야 합니다.

▶위 회장=전직관료들이 좋은 경륜을 활용해 기업이나 단체에서 유익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결국에 가선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에 공정한 정의가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이 원장=관피아 문제를 개선하려면 선발절차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문제 제기 시 중앙시험선발위원회가 조사해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가장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게 공무원들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기가 뚝 떨어진 상황인데, 공무원들을 북돋아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서 결국은 양질의 서비스로 되돌아오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정리=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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