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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희미해지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생소하게 여기는 것이 ‘스톱 사인’(Stop Sign)이다. 동네 골목길 같은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는 대부분 스톱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설치돼있다.

스톱 표지판이 설치된 교차로에 진입하는 모든 차량은 무조건 멈춰 서야 한다. 슬금슬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지선 앞에서 완전히 ‘정지’(Stop)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먼저 진입한 순서대로 한번에 한대씩 지나간다. 꼬리물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스톱 사인을 무시하는 미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스쿨버스에도 스톱 사인 표지판이 있다. 스쿨버스가 정차하면서 스톱 사인등이 들어오면 뒤따라 오던 차량은 바로 멈춰서야 한다. 절대로 추월해선 안된다. 중앙선 건너편에서 오던 차량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 일 수도 있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시민들은 교통체증 등의 불편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스톱사인은 미국 사회의 성숙한 시민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교통 법규는 철저히 지켜야할 불문율이자, 사회의 근간을 유지하는 ‘기본’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차량 통행이 드문 한밤중이나 새벽녘이면, 교차로 빨간불을 무시하고 슬금슬금 통과하는 차량이 부지기수다. 그나마 신호등 없이 스톱 사인만으로 동네 교차로가 운영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사고 목격자’를 찾는 플래카드가 끊이지 않을 듯하다.

앞서가던 스쿨버스나 학원 버스가 정차하면 중앙선을 침범해서라도 추월하고야 만다.

막히는 출퇴근길, 앞차와 적정거리를 유지할라치면 여지없이 머리부터 들이미는 얌체 운전자에게 앞자리를 내줘야 한다. 한남대교 남단, 잠실 방향 올림픽대로 진입로에서는 고작 50m를 앞서가기 위해 뻔뻔히 갓길을 내달리는 운전자들의 위협을 매일매일 감수해야한다.

고속도로는 가히 전쟁터다. ‘좌측 차로 추월’이란 기본 원칙은 무용지물이 됐다. 제한속도 110㎞인 편도 2차선 중부고속도로의 예를 들어보자. 주말이면 1차선은 대부분 90㎞로 달리는 ‘천하태평’ 운전자 차지다. 1차선이 완행(?) 차선으로 변하자, 시속 140㎞ 넘게 달려오던 차량은 우측 차선(2차선)으로 연신 추월을 시도한다. 한국의 고속도로는 좌우 차선을 자유자재 넘나드는 F1 경주장을 방불케 한다.

일반도로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시내에서 차량 소통이 제일 원할한 곳은 아이러니 하게도 제일 오른쪽, 맨 끝 차선일 때가 많다. 1차선은 고속 주행선이라는 상식은 운전면허 시험장에서만 통용된지 오래다. ‘위험천만’ 우측 차로 추월은 이제 한국 도로에서 일반화된 현상이 돼버렸다.

세월호 참사로 꽃다운 나이의 단원고 학생 243명을 잃은지 77일이 지났다. 11명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기본과 원칙만 지켰어도 막을 수 있었던 안타까운 비극이다.

하지만 벌써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세월호의 교훈은 희미해져가고 있다. 기본이 무시되고, 불법과 편법이 판 치던 세월호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 너무나 쉽게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씁쓸하다.

국제팀장 /nam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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