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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고소공화국, 오명 벗어야
이동희 경찰대 법학과 교수

고소란 범죄피해자가 수사기관에 범인의 처벌을 요구하는 행위다. 제3자가 신고하는 고발과 더불어 범죄발생을 수사기관에 알려 수사를 개시하는 역할을 한다. 종국적으로는 범죄자에게 국가형벌권을 행사케 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아이러니지만, 이러한 형사절차상의 고소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에 대한 민사구제제도로서 기능해온 측면도 크다. 민사절차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증거도 수집해야 하고, 재판진행에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쓰는 것에 비해 고소장 하나만 경찰에 제출하면 손쉽게 해결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고소가 이미 적정선을 훨씬 뛰어넘어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해 고소건수가 40∼50만 건을 넘었고, 전체 형사사건의 20% 이상이 고소로 점철돼 있다. 일본과 비교하면 인구대비 100배가 넘는다는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통계로 언론 등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고소사건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죄명은 사기죄다. 전체의 거의 절반이다. 단순 채무불이행 등 민사사안이라 결국 불기소로 종결되는 사건이 대부분이고, 기소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수사력의 심각한 낭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범죄발생건수에 허수를 보태 범죄율을 높이는 것도 큰 문제다. 고소를 당한 사람의 불이익이나 권리침해도 심각하다. 억울해도 수사기관에 출석해 무죄를 항변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출석에 불응하면 체포될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수사 일선의 골칫거리로 소위 기업형 무더기 고소가 있다. 한때 신용카드회사들이 카드대금 연체자를 모조리 사기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대부업체도 뒤를 이었다. 수사기관의 호출에 겁먹고 돈 갚기를 바라는 심산이다. 기업이 국민세금으로 운용되는 수사기관을 채권추심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몇 해 전에는 인터넷에서 무심코 특정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한 청소년 등을 저작권법위반으로 무더기로 고소한 일도 있었다. 법률사무소가 앞장 서 집단고소를 대행하고 합의를 종용해서 사회적 비난이 들끓었다. 저작권 침해는 돈 갚으면 고소취하해서 처벌 안 되는 친고죄인 것을 교묘히 악용한 셈이다. 인터넷이란 바다에서의 저작권 침해는 무수히 많은 모래알 수에 비견된다. 재수없이 나만 적발된 형국이라면 사법적 정의를 세우기 어렵다. 6만 건을 넘어섰던 저작권법위반 고소가 꽤 줄다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드는 형세다. 정책적 판단이나 입법적 해결이 필요해 보인다. 민사분쟁의 해결이나 특정기업이익을 위해 일국의 수사권이나 형사재판권이 좌우돼선 안 된다.

고소했다고 무조건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하는 관행도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수사권 행사는 범인이 특정되고 범죄혐의가 구체적으로 입증돼야만 할 수 있고, 이때도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는 비례원칙이 적용된다. 이것이 세계 각국의 보편기준이다. 민사절차의 기능부전이 해소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형사처벌이란, 어떠한 다른 해결방법도 없을 때만 허용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 헌법 정신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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