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 홈쇼핑 甲질 공멸 부른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누군가는 설마 그럴까라고 반문했고, 누군가는 무릇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홈쇼핑의 일탈된 행태가 결국 수면 위로 떠올랐다.

23일 홈쇼핑업계의 독과점적 시장구조와 납품 경쟁을 악용해 납품 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해온 혐의로 신헌 전 롯데홈쇼핑 대표와 임직원 7명이 구속기소되고, 전현직 MD 3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홈쇼핑 론칭과 백화점 입점 등의 명목으로 벤더업체와 카탈로그 제작업체 등에게 1억 3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상납받았고, 영업분야 간부들은 상품 방송을 ‘황금시간’에 넣어주겠다는 명목으로 많게는 10억여원에 이르는 뒷돈을 챙겼다. 여기에 신 전 대표는 인테리어 공사비를 과다 지급해 돌려받는 수법으로 회사돈을 횡령, 사적으로 쓴 혐의도 받고 있다.

최근 한 홈쇼핑업체 관계자가 대화 중 ‘억울함’을 호소한 적이 있다. “홈쇼핑이 중소기업이 설 수 없는 자리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소기업에게 최대한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홈쇼핑업체 관계자는 ‘상생’이란 큰 움직임에 ‘최선’이라는 단어로 답했다. 하지만 이번 롯데홈쇼핑의 납품 비리와 횡령이라는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자니 그 ‘상생’이란 단어는 비단 진실일 지 언정 마냥 공허하다. 홈쇼핑의 이미지가 도매금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다.

홈쇼핑시장은 불공정한 거래의 유혹을 받기 쉽다. 아무리 쪼개고 쪼갠들 하루가 24시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포화상태인 방송편성 중 그 한 토막을 얻기 위해 상품 생산자들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버는 홈쇼핑 입장에서는 잘 팔리는 물건을 제조하고, 주문량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업체가 필요하다.

한정된 자원은 홈쇼핑이란 유통채널을 자연히 ‘갑(甲)’으로 만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어렵게 론칭에 성공해도 황금시간대에 배정받지 못하면 미리 확보한 재고물량을 소진할 수 없는 ‘선입고’ 구조여서 로비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단순히 ‘갑질’에 취한 한 홈쇼핑업체에게만 돌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물건을 만들었지만 판로가 없다. 그래서 홈쇼핑은 영세업체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롯데홈쇼핑, 벤더업체에 돈을 건넨 것으로 밝혀진 중소 영세업체 6곳은 품질과 생산력이란 정당한 경쟁항목을 두고 리베이트를 택했다. 간절함은 ‘을(乙)’에 대한 정서법상 이해할 수 있을지 언정 현실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홈쇼핑이 재밌어졌다. ‘쇼퍼테인먼트’라는 이름 하에 물건을 파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웃으면서 즐기는 것이 요즘의 홈쇼핑이다. 좋은 물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홈쇼핑의 ‘업’이다.

롯데홈쇼핑의 비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그나마의 교훈이 있다면, 홈쇼핑이 이 같은 본연의 업을 버리고 납품업체의 지갑이 부당하게 열리는 순간 홈쇼핑 뿐만이 아니라 풍운의 꿈을 안고 메이저 채널을 꿈꾸던 중소 영세업체들까지도 모두다 ‘공멸’한다는 사실, 그 뿐이다. 

balm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