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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도망자, 그림자라도 잡고 싶다
수사 협조하겠다던 유병언, 검찰 뒤통수 치고 대담한 도피행각
검·경은 물론 군까지 동원됐지만 한달째 오리무중
미흡한 초동대처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 초래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이 카피는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을 쫓는 검ㆍ경의 심경을 한 마디로 대변한다.

유 씨가 자취를 감춘 지도 이제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그는 지난달 16일 검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한 데 이어 나흘 뒤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변호인을 통해 전 재산을 내놓고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던 그는 검찰의 뒤통수를 치며 ‘도망자’의 길을 택했다. 검ㆍ경은 유 전 회장과 장남 대균(44) 씨 검거를 위해 대대적 작전을 펼쳤다. 전국을 바둑판식으로 나눠 직급별로 구역을 맡겨 저인망식 수색을 펼치고 있다. 전국 모든 경찰서마다 검거전담팀을 편성하고 인원은 150명에서 2455명으로 16배 이상 늘었다. 급기야 군까지 동원됐고 지난 13일에는 유 씨 부자 검거를 위해 전국 곳곳에서 임시 반상회도 열렸다. 그래도 아직 성과는 없다.

과연 무엇이 유 씨가 이토록 대담한 도피행각을 벌일 수 있도록 충동질한 걸까? 표창원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일반적으로 도주자들은 중형이 내려질 경우에 대한 두려움에, 비합리적 선택임을 알고도 도주하는 경향이 많다”고 설명했다. 또 영화 ‘도망자’의 실제 주인공처럼 억울함에 도피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다만 유 씨의 경우 일반론을 적용할 수 없다고 표 소장은 말했다. “유 회장은 횡령, 배임, 탈세에 관한 부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300여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표 소장은 풀이했다. 일단 시간을 벌면서 여론이 바뀌길 바라고 세월호 사고에 대한 책임도 면하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일반적 도주자들은 바람 소리 하나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일만큼 불안심리가 강하다. 도피 끝에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 씨가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 교수는 “유 씨에게선 ‘게임 한 번 해보자’, ‘전쟁 한 번 치르자’는 심리가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는 금수원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가 이를 압축적으로 대변한다는 것이다. “공권력을 조롱하고 언론마저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구원파 신도 등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유 씨의 도주 행각에서도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의 면모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여느 범죄자와 달리 아픔에 공감을 못 느끼고 죄책감이 없기에 도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재산ㆍ종교적 지위를 마음껏 활용하고 구원파를 종교적으로 탄압받는 사회적 약자로 포장하는 등 유 씨는 방어적이고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유 씨가 자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한편 유 부자 검거를 위한 검ㆍ경 수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특수수사 검사들이 수사를 맡았는데, 유 씨의 검거는 사실상 일반적 수사에 가깝다”며 “범인 검거에 노하우가 많은 경찰이 수사를 맡고 검사는 공소유지역할을 맡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표 소장은 지금의 형국을 ‘미꾸라지 잡기’에 빗대었다. “미꾸라지는 흙탕물을 만들어 자신을 숨기는 데 유병언 역시 이미 물을 흐려놓은 상태”라며 “군까지 수색에 동원한 것은 물을 다 퍼내겠다는 발상인데 미꾸라지가 윗물ㆍ아랫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물량 공세도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결과론이지만 검찰이 수사 초기단계부터 도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병확보에 주력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미꾸라지 잡기에 온 나라가 혈안이 돼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수사기관을 독촉하고 있다.

하지만 유 씨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쯤 되면 검ㆍ경이 무능한 건지, 유 씨가 신출귀몰한 건지 의구심도 든다. 밀항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하지만 검ㆍ경은 유 씨가 아직 한국을 벗어나지 못했을 걸로 보고 밀항 차단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뛰어봤자다. 아무리 날쌔고 빨라도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어림도 없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으론 60만 대군이 버티고 있다. 뛰어 봤자다.” 영화 ‘와일드 카드’의 형사 방제수(양동근 분)가 내뱉은 마지막 대사가 현실에서도 유효하길 바랄 뿐이다.

김기훈 기자/kihun@herla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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