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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첨단 수사강국’ 말뿐…“못 잡는 거야, 안 잡는 거야”
DJ 정부말기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현상금만 내걸고 출국금지는 빼먹어…대우그룹 분식회계 등 지도층 범죄에 무기력
해외 도피중 형 시효 넘기면 처벌 못해…도망 부추기는 법·제도 무용지물


“못 잡는 거야, 안 잡는 거야”

대한민국 공권력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신병 확보에 번번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이 갖는 생각이다.

해외에 첨단 수사 기법을 수출하며 ‘수사 강국으로 거듭났다’는 자화자찬이 들리던 때가 엊그제인데, 어떻게 나이 든 도망자 한 명을 잡지 못하는 지 답답할 따름이다.

그런데 조금만 돌이켜보면 사회지도층이 연루된 범죄와 관련해서는 유독 수사당국이 무기력했다. 따져보면 도망을 방조하는 수사, 그리고 법 체계가 문제다.

▶현상금 걸었는데, ‘출국금지’는 빼먹었다(?)= 14년 전 김대중 정부 말에 ‘진승현 게이트’라는 정관계 로비 사건이 터졌다. 당시 검찰은 MCI코리아 진승현 부회장이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열린금고, 한스종금 등에서 2300여억원을 불법 대출받고, 리젠트증권 주가를 조작한 것과 관련해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했다.

문제는 진 씨의 구명 로비스트이자 로비 수사의 열쇠인 김재환 전 MCI코리아 회장의 신병 확보였다. 검찰은 현상금까지 걸며 대대적인 공개 수사에 나섰지만 이 기간 김 씨는 이미 해외로 몸을 피했다. 어이없게도 출국 2주가 지나서야 검찰은 이 사실을 확인했다.

뒤늦은 여권 연장불허 조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었다. 사건의 핵심 인물을 출국 금지 조치도 하지 않은 채 무방비로 풀어놓고 정작 애먼 곳에서 인력과 비용을 낭비한 셈이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이나 이용호 게이트 등 다른 굵직한 정치권 수사들도 신병 확보를 소홀히 해 주요 수사 대상자들이 도피 등으로 자취를 감추며 수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때마다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이 제기됐지만 밝혀진 것은 없었고 검찰이 이에 책임을 진 적도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 시계는 돌아간다(?)…해외도피 해도 시효 ‘진행형’= 도망을 부추기는 법과 제도도 문제다. 법무부에 따르면 해외로 출국한 기소중지자는 2010년 358명에서 지난 해 577명까지 급증했다. 수사 대상자 뿐만 아니라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 도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고인이 없는 상태에서도 재판은 진행되니 형은 선고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집행은 이뤄지지 못해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해외 도피가 의심될 경우 수사당국은 인터폴 등 국제 수사기관에 수배를 의뢰하지만 적극적인 수사는 이뤄지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돈만 있으면 해외에서 호위호식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한보 비리 사건의 정태수 전 회장과 같은 기업인들이 해외로 출국해 수년째 도피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해외 도피 중 형의 시효를 넘기면 이후 귀국하더라도 법적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해외도피 중에는 형 시효가 정지되지 않는다. 법무부에 따르면 해외체류로 집행이 면제된 자유형 미집행자는 지난 해 6월 기준 약 120명에 달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유죄판결을 선고받고도 형 집행을 면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경우 소재조차 파악되지 못해 시효 완성을 막을 마땅한 수단이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해외 도피기간 중 형 시효를 정지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통과 시점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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