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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이형석> 좋은 번역이 콘텐츠 산업의 근간이다
“무자비하고 기이하며 예기치 않은 긴장으로 가득찬 이야기, 그 속에 깃든 재능과 진정성, 유머에 독자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이 작가들은 한국 현대 문학의 활력을 입증시켜준다. 〔…〕한국문학은 허세나 자기연민, 자기도취 없는 엄정한 언어로 씌여졌으나 항상 한국인 특유의 자조적 유머와 함께 비유와 상상력으로 충만하다. ”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프랑스의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지난 15일 일간 르 피가로에 2쪽에 걸쳐 기고한 한국 소설 단편 선집 ‘택시 운전기사의 야상곡’(Nocturne d’un chauffeur de taxi)에 대한 서평 중 일부다. 이 책은 김애란, 한강, 김연수, 등 소설가 10명의 단편을 묶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됐다.

최근 한국문학이 잇따라 조명을 받고 있다. 신경숙의 소설로는 ‘엄마를 부탁해’에 이어 두번째로 영역돼 지난 3일 출간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해외 유력 언론과 서평전문지로부터 전작에 버금가는 상찬을 받았다. 김애란의 단편집 ‘나는 편의점에 간다’의 불어 번역본은 최근 프랑스 비평가와 기자들이 제정하는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같은 성과는 한국 문학의 번역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사실 한국 문학의 번역 소개는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훨씬 뒤늦었을 뿐 아니라 양과 질에서도 절대적으로 못 미쳐 이제 막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반가운 것은 세계적인 가능성이 잇따라 확인됐다는 점이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 작가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프랑스 독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고 평했다. 한국계 미국 작가 나미 문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신경숙의 ‘어디선가…’의 서평에서 번역서의 점유율이 3%밖에는 되지 않는 미국 출판시장에서 신경숙이일으킨 열풍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번역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서뿐 아니라 국내 인문학과 콘텐츠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이 때의 번역은 한자나 고어로 된 한국과 중국의 고서ㆍ고전를 현대 우리말로의 옮기는 작업이다. 중국 고대 역사서인 ‘후한서 본기’를 번역한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만일 ‘조선왕조실록’이 번역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수많은 역사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었겠느냐”며 “파생 창작물을 고려한다면 좋은 번역은 콘텐츠 산업의 근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양 고전 뿐 아니라 외국 거장 작가의 우리말 번역 역시 양과 질에서 턱없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한국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 소개하거나 동양 고전을 현대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는 만만치 않은 장애가 있다. 번역에 대한 학계에서의 홀대와 저평가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논문이나 저서 출간에 비해 번역 작업은 평가절하되는 학계의 현실을 지적했다. 민음사 장 대표 역시 “학계에선 번역에 대한 평가가 낮으니까 전공자들에겐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민간(출판계)에선 전문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투자 대비 수익이 낮으니 시도하기 어렵다”며 “콘텐츠산업의 근간이라는 측면에서도 국가적인 지원을 늘이고 전문 번역사 제도, 번역 석사 제도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석 라이프스타일부 차장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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