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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사태’ 길환영 사장 해임 가결까지 28일 간의 기록…향후 과제는?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월호 침몰사고 보도과정에 촉발한 KBS의 독립성ㆍ공정성 논란이 ‘청와대 외압설’로 확산된지 27일 만에 길환영 사장이 해임됐다. 길 사장이 임명부터 해임까지 세운 기록도 많다. KBS PD 출신 첫 사장이자 재직 중 내부 승진된 첫 사례였으며, 파업 도중 해임된 첫 번째 사장이다.

지난 5일 오후 4시 KBS 이사회는 서울 여의도 본관에서 임시이사회를 열고 길환영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지난달 28일 진행된 이사회가 9시간의 격론에도 결론을 내지 못한 것에 비한다면 2시간 30분 만에 통과된 빠른 결정이었다. KBS이사회는 여당 추천 이사 7명, 야당 추천 이사 4명으로 구성, 이날 길 사장의 해임제청안은 찬성 7표, 반대 4표로 통과됐다.

▶ ‘청와대 외압설’로 시작된 KBS 사태, 28일 간의 기록=이른바 ‘KBS 사태’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청와대와 길환영 사장의 보도 개입 의혹 폭로가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이에 앞서 KBS를 둘러싼 보도 편향성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지난달 3일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 때문이었다. 김 전 보도국장은 세월호 사고 희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를 비교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김 전 보도국장은 노조를 통한 해당 발언의 공개로 해명을 거듭했으나, 여론은 좋지 않았다. 그 무렵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과정에서 자사 보도를 비판하는 막내급 기자들의 반성문이 사내게시판에 올라왔다. “우리는 세월호 현장에서 기레기다”, “현장에 있으면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담지 않았다”는 자성의 목소리 안엔 KBS의 ‘편향적 보도’에 대한 참담한 반성도 함께 담겼다. 세월호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던 기자들이 내놓은 반성문에 온라인이 들썩이며 화제가 됐으나, 사측 간부들은 “사원증에 피도 마르지 않은 기자들의 집단반발”로 치부하며 내홍이 깊어졌다. KBS를 둘러싼 공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한 무렵이다.

며칠 뒤인 5월 8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분노는 KBS로 향했다. 유가족들은 먼저 떠나보낸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안고 여의도 KBS를 항의 방문해 김시곤 보도국장의 파면과 길환영 사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KBS 간부들과의 논의가 난항을 거듭하자 유가족들은 청와대 인근에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사진제공=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청와대로까지 향한 유가족의 울분에 KBS는 다음달인 9일 부랴부랴 김시곤 보도국장의 긴급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이 바로 ‘KBS사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다.

김 보도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부적절한 발언을 해명한 뒤 사퇴 의사를 밝히며 돌연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길환영 사장이 “사사건건 보도본부에 개입해왔다”며 공영방송 사장으로서의 자질을 되물었다. KBS의 보도 독립성 논란이 ‘청와대 외압설’로 확산되는 폭로가 나온 날이다.

이후 16일 KBS기자협회 총회에 참석한 김 전 보도국장은 재임 시절 청와대로부터 수시로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하며, KBS의 보도 독립성, 공정성 논란이 삽시간에 확산됐다. “윤창중 뉴스를 톱기사로 올리지 마라”, “해경 비판 자제하라”는 등의 김 전 보도국장의 구체적인 보도 개입 폭로에 KBS 내부은 순식간에 휘청이기 시작했다.

KBS의 보도 독립성 논란이 거론된 게 하루 이틀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직 보도국장의 입을 통해 나온 길환영 사장과 청와대의 보도 개입 의혹에 KBS 조직원들은 참담한 심경으로 ‘KBS의 보도 독립성을 지켜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김 전 보도국장의 폭로 이후 KBS 보도본부 부장단은 길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일괄 사퇴했다.

사태가 커져갈 무렵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길환영 사장의 신임투표를 실시했다. 지난달 17일 진행된 투표 결과 97.9%로 ‘불신임 의견’이 나왔다.

방송 독립을 외치는 조직원과 사측의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한 지난달 19일은 긴박한 하루였다. 기자협회는 제작거부에 돌입했고, 양대 노조는 아침부터 길환영 사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시작했다. KBS이사회 야당 측 이사들은 길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제출했다. 길 사장은 하지만 험난하게 사장실로 들어온 오후엔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이날부터 KBS 메인뉴스는 19분만 방송되며 파행을 거듭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해경 해체 발표가 있던 날이었지만, KBS 메인뉴스는 방송 파행으로 단신성 보도만 이어갔고, 남은 시간을 ‘돌고래 뉴스’로 채우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다.

이후 5월 21일 KBS 양대노조는 총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했고, 길환영 사장은 이날 사내방송 특별담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자리엔 연연하지 않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전 직원이 힘을 모아 KBS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 진원은 이미 등을 돌린 모습이었다.

이틀 뒤인 23일엔 새노조의 총파업 찬반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역대 최고 찬성률인 94.3%로 새노조는 파업을 결의했고, KBS PD협회는 일일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1노조의 총파업 찬반 투표 결과는 27일 발표됐다. 1노조 역시 83.14%의 찬성률로 총파업이 가결됐다. 총파업 가결에 사측은 양대노조의 움직임을 ‘볼온한 정치 파업’으로 규정했으며, 노조의 압박을 형사고소 등의 조치로 대응했다.

KBS 이사회는 지난달 26일 보도통제 의혹 확산에 따른 공사 공공성과 공신력 훼손 등의 사유로 길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상정한 뒤 28일 오후 4시 표결을 위한 정기이사회를 열었다. 하지만 9시간의 논의에도 28일의 이사회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표결을 연기했다. 양대노조는 이에 29일 오전 5시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직종, 지위, 정치적 이념을 막론하고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한 목소리였다.

총파업 돌입 이후 길환영 사장과 조직원의 갈등이 깊어진 건 지난 2일 사측에서 길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보직을 내려놓은 보도국 부장 6명을 지방총국 평기자로 발령하는 인사 조치 때문이었다. 이에 양대노조는 보복인사라고 반발했고,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보직사퇴한 임창건 보도본부장에 이어 임명된 이세강 보도본부장이 해당 인사 직후 사표를 제출했다.

다음날인 3일 KBS 기자협회는 길 사장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같은 날 ‘추적60분’ ‘심야토론’ 등을 맡아온 장 모 CP가 시사교양 제작부문에도 길 사장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심야토론’제작 과정과 ‘진품명품’ 진행자 교체, ‘추적60분’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행정소송 등 구체적인 개입 사례를 적은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렸다. 


6.4지방선거가 있던 4일 총파업 여파로 파행을 빚을 뻔했던 KBS의 개표방송은 부실하나바 진행됐다. 하지만 이날 홍기섭 앵커는 개표방송을 진행하기 직전 사내게시판에 보지 사퇴 의사를 밝힌 글을 남기여 길 사장 체제 하에서 마지막 방송을 진행했다.

▶ 길환영 사장 해임안 가결…이후 과제는=긴박하게 흘러온 사태를 돌아보며 KBS이사회는 지난 5일 길환영 사장의 해임제청안이 통과시켰다. 야당 측 이사뿐 아니라 여당 측 이사 3명도 길 사장의 해임안에 동의한 결정이다. 이번 이사회의 결정에는 여당 측 이사 역시 보도기능이 마비된 KBS의 장기간방송파행에 대한 우려가 압박으로 작용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양대노조의 동시파업과 350여명의 간부들의 보직사태, 기자협회의 제작거부로 이미 메인뉴스는 파행방송됐고, 최소인력으로 진행된 개표방송에서 앵커들은 ‘방송독립’ 배지를 가슴에 달고 나와 진행했다. 개표방송에 이어 지상파 3사의 최대 격전인 월드컵도 파행 방송되리라는 우려는 여당 측 이사들의 입장에서도 KBS의 앞날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것이라는 데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길 사장의 해임안이 가결됨에 따라 양대노조는 6일 오전 5시로 현장에 복귀했다. ‘잠정복귀’다. 이사회에서의 길 사장의 해임안 가결은 제작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첫 관문일 뿐이라는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표면적으로는 이사회의 해임제청안은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결정을 내려야 완결된다는 것이 양대노조가 선을 그은 ‘잠정복귀’의 이유다. 하지만 이후 과정은 양대노조가 강조하는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돌리기 위한 진짜 시작이다. KBS 이사회는 박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면 이후 신임 사장 공모를 시작한다. KBS의 사장은 이사회가 최종 1인을 선발해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한다. 이 과정에서 제2의 ‘길환영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논의가 과제로 남았다. KBS의 사장 선임 구조 개선 논의와 공정방송 수호를 위한 내적 장치 마련이 KBS에 남겨진 숙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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