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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선거] 황혼에서 새벽까지…‘선거불패’ 이룬 남경필의 숨은 에피소드
[헤럴드경제=박정규(수원) 기자]‘황혼에서 새벽까지’ 피를 말리는 접전이었다. 결국 남경필의 승리였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지난 1998년 3월 수원 팔달구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 남평우 전의원이 갑작스럽게 작고하면서 아버지의 지역구를 발판 삼아 보궐선거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남 당선자의 나이는 33세였다. 그는 15대부터 19대까지 치뤄진 5번의 총선에서 한번도 패하지않았다. 그는 ’선거불패‘의 ’신화‘를 이어갔다.

연세대 사회사업과를 졸업한 남 당선인은 아버지가 사주로 있던 경인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에서 3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기 화성에서 70대 노파가 살해된 화성연쇄살인 취재가 사실상 그의 첫 사회부 수습기자 업무였다. 새벽까지 농수로 주변 민가를 돌면서 취재를 한 그는 지금도 그때의 ’열정‘을 잊지못한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그는 많은 선 후배기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아버지가 사주로 있던 회사이지만 스스로 몸을 낮추고 친화력과 겸손함에다 ’붙힘성‘도 좋아 많은 선후배들이 아꼈다. 이때의 기자경력이 그에게 정치적 밑거름이 됐다.

미국 유학을 떠나 1년간 보스턴 BU(Boston University)에서 어학 연수를 마친 그는 예일대로 돌아와 경영학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뉴욕대에서 행정학공부도 했다. 예일대에서는 한인학생회를 조직해 ’초대한인학생회장‘도 맡았다. 방학에는 한국에 돌아와 예일대 동문들을 찾아가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않았다.


그는 부친 장례식이 치뤄진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수많은 ‘거물’ 정치인을 첫 만났다. 가슴떨린 만남이었다. 그는 장남이었지만 아버지 작고당시 정치에 꿈은 없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를 놓아주지않았다. 부친이 ‘와신상담(臥薪嘗膽))끝에 만든 지역구를 남에게 고스란히 넘겨준다는 것도 사실상 아까웠고 학력과 재력을 갖췄다는 점도 ’동력‘으로 부인할수 없었다. 당시 ’남경필‘이란 이름석자는 기자들 사이에서만 조금 알려진 이름뿐이었다.

정치를 결심하기전 그는 지인들과 용인 골드CC에서 골프라운딩을 가졌다. 지인이 하루에 두차례 이글을 하자 첫 이글한 공을 달라고 부탁했다. 지인에게 ‘첫 이글한 골프공을 가지면 행운이 올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10년이 지난후 그는 이글 공을 받았던 지인을 찾아와 반지를 선물했다. 그는 ”첫 이글한 공을 선뜻 내줘서 고마웠다”며 “늘 행운이 뒤따르는 것 같아 아내에게 특별 부탁해 반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첫 국회의원 보궐선거 개표당일도 지금처럼 ’초조‘했다. 선거운동 피로를 풀기위해 수원 호텔캐슬(구 동수원호텔)사우나에서 설치된 TV를 통해 그는 모 방송사 출구조사결과를 봤다. 이번 방송3사의 출구조사처럼 상대방후보에게 지는 것으로 나왔다.

그는 ”뚜껑 열어봐야겠지만 난 이길 것 같다“며 패기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방송3사의 출구조사 예상을 뛰어넘어 또 당선됐다. 이번에는 국회의원이 아닌 그에게 새로운 도전인 경기도지사였다. 그는 개표가 시작되고 나서 줄곧 한번도 역전을 허용하지않고 앞서 나갔다.

주위에서는 그는 ‘운이 엄청 좋은 정치인’으로 꼽는다. 총선에서도, 이번 경기지사선거에서도 그는 아슬아슬했지만 어김없이 승리했다. ‘정치인생의 큰 굴곡’은 그에게 없는 듯하다.

fob14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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