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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이호철> 지역공약의 꿈 실현시킨 증권시장
뉴욕주의 이리운하 건설 요청
중앙정부선 일언지하에 거절
월가는 비전 · 수익성 직감 지원
운하 개통후 지역경제 대변화



한 지방선거 공약에 대해 중앙정부의 반응은 냉랭했다. 대통령은 “미친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1817년, 드윗 클린턴은 이리호와 허드슨강을 연결하는 운하건설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뉴욕주 지사에 당선됐다. 그가 연방정부에 재정지원을 요청하자, 미 제퍼슨 대통령은 이렇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연방 정부의 세출 예산 규모가 20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한 지방정부가 연방정부 지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00만 달러의 운하건설 예산지원을 요청했으니 말이다.

이리운하는 뉴욕시 허드슨강과 이리호변 버펄로를 잇는 운하다. 이것이 개통되면 5대호 인근 중서부 지방과 대서양간의 뱃길이 열린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보다 훨씬 긴, 장장 584km의 길이의 대역사였던 만큼 지방정부가 추진하기에는 무리였다.

넓은 땅을 가진 미국이 독립 당시 13개 주가 대서양 연안에 몰려 있었던 것도 내륙은 물자를 실어 나를 수송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운하가 개통되면 오하이오주, 인디애나주, 미시간주, 일리노이주 등 중서부 농산물을 동부로 수송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클린턴 주지사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찾아갔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의 증권 전문가들의 반응은 달랐다. 사업의 원대한 비전과 수익성을 직감한 증권 전문가들은 높은 수수료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들은 주정부와 발행방법과 조건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궁리했다. 지방정부가 처음 벌이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던 만큼 채권은 기간 별로 발행하고 공사도 구간 별로 시행하기로 했다. 월스트리트 중개인은 이 채권을 소화시키기 위해 국내 투자자뿐 아니라 당시 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던 영국 런던을 공략하는 전략도 세웠다.

1817년 7월, 마침내 이리운하가 착공됐다. 2년 후, 운하의 첫 구간이 개통되자, 뉴욕 주는 갑문마다 통행료를 받았다. 이때까지 운하 건설에 투입된 자금은 불과 100만 달러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그 해 통행세 수입은 25만 달러에 달했다. 성공을 예감한 이리 운하 채권은 런던 금융가에서 불티나듯 팔렸다.

충분한 자금이 뒷받침되자 운하 건설은 더욱 속도가 붙었다. 당초 10년으로 계획했던 공사 기간이 2년 앞당겨 완공을 보게 됐다. 마침내 1825년 10월, 클린턴 주지사 일행을 태운 첫 배가 버펄로를 출발하여 허드슨 강을 거쳐 대서양에 면한 뉴욕시에 도착했다.

운하의 개통은 지역경제의 그림을 바꾸어 놓았다. 버펄로에서 뉴욕시까지 밀가루 1톤을 수송하는 데 120달러의 비용과 3주의 시간이 들던 것이 운하 개통 후에는 6달러, 8일로 대폭 단축됐다. 이로써 중서부의 화물선이 이리운하를 타고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뉴욕시는 자연스럽게 물류운송 허브로 발전했다. 당시 보스턴, 볼티모어 등 다른 항구도시 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맨해튼이 해상물류와 금융의 메카로 우뚝 선 것이다. 운하 양안의 도시들도 하루가 다르게 번창해갔다.

뿐만 아니라 시카고 등 오대호를 중심으로 중서부 지방이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선거공약에서 출발한 지역개발 프로젝트, 중앙정부로부터 냉대를 받던 지방선거 공약이 증권시장을 통해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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