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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가들의 만화가, 만화를 넘어선 만화…박흥용展
“불쌍한 친구여, 어쩌다 배고픈 불행이 그대 몫이 되었는가.어서 들게. 남은 건 내 자선일세.” “어쩌면 삶이란 순리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좌절하지 않는 도전에 있는 것이 아닐까.”

만화책 ‘말풍선’에 씌여진 대사라기엔 지극히 시적이고 연극적이다. 독창적인 작화와 철학적인 텍스트로 ‘만화가들의 만화가’로 불리는 박흥용(53ㆍ사진) 화백이 ‘펜 아래 운율, 길 위의 서사’라는 타이틀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해 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 아르코미술관이 2014년 대표 작가로 선정, 2008년 고 고우영 화백의 전시 이후 두번째 만화 전시를 열었다.

[사진 제공=아르코미술관]

산업의 영역이 아닌 예술의 영역에서 만화의 시각적 미학성에 초점을 맞춘 이번 전시는 한국 만화계에서 대표적인 ‘작가주의 만화가’로 알려진 박흥용의 1981년 데뷔작 ‘돌개바람’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세계를 조명했다.

대중적이고 표준화된 상업만화의 코드를 답습하지 않고 독자적인 연출과 작법을 갖고 작업해 온 박흥용은 청소년 만화에서 주로 그려지는 판타지, 사랑, 성공담이 아닌 사회 부조리, 소외된 이웃, 공동체 등 현실 문제와 철학적 메시지에 천착, 형식과 주제면에서 작가주의적 면모를 보여왔다.

일반 대중보다 소수 마니아층에서 주로 회자되던 작가가 재조명받기 시작한 건 2010년 이준익 감독의 동명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원저자로 알려지면서부터다. 1995년 성인만화 잡지 ‘투엔티세븐’ 창간호에 연재됐던 이 작품은 조선 선조 때를 배경으로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려는 이몽학과 맹인 검객 황정학, 그리고 그를 사부로 모시는 견자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당대의 다양한 인물군상을 그렸다. 


세밀한 심리묘사와 깊이 있는 메시지로 특정 시대에 갇힌 사극이 아닌 바로 오늘의 현실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1996년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만화문화대상 저작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제 1전시실은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작품들을 아카이브 형태로 구성했다. 사회상을 깊이 있는 붓터치로 그려낸 초창기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제 2 전시실에서는 현재 출간중인 작품 ‘영년’의 인물 드로잉 과정을 담은 8분짜리 영상 작업을 볼 수 있고, 국내 미발표작인 ‘6일천하’도 최초로 전시됐다. 


박흥용은 “사람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의지가 있다. 바로 그 (행복의) 낙원을 찾는 과정이 내 만화의 소재”라고 말했다.

평생을 만화 작업에 헌신한 모든 작가들을 존경한다는 작가는 내가 원하는 ‘낙원’과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낙원’ 사이에서의 고뇌를 털어놨다. 꿋꿋하게 작가주의를 지향해 온 35년 작품 활동은 희망과 절망이 끝없이 교차하는 ‘고행’의 연속이었음이 그의 단편 만화 곳곳에 묻어나 있다.


“그렇게 나는 역행이 품고 있는 모순덩어리에 긁히고 말았다.” “돌아가고 싶다. 이 고통스러운 고행을 청산하고 과거 그 안락했던 생활로….”

전시는 8월 3일까지.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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