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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시대의 인간 존재론,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1’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세계는 의식에 주어진다’는 17세기의 성찰을 거쳐 ‘의식은 언어로 구조화된다’는 20세기의 철학을돌아 이제는 ‘미디어가 의식을 재구조화한다’는 새로운 인식론의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가 지배하는 시대는 세계와 의식 사이의 관계를 따지는 인식론과 존재론에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인문학의 시도가 필요하다. 진중권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등장한 제 2차 영상문화, 제 2차 구술문화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인문학의 시도를 ‘테크노에틱(technoetic) 인문학’이라고 명명한다. 로이 애스콧의 용어를 빌어왔다는 테크노에틱은 ‘테크노’(techno)와 인식을 의미하는 ‘노에시스’(noesis)의 합성어다.

진보 논객으로 잘 알려진 진중권이 인문학자이자 미학자로서의 사유를 담은 새 책을 최근 펴냈다. ‘이미지 인문학1’(천년의상상)이다. 총 2권 중 이번에 출간된 첫째권은 가상과 실재의 분리를 근본으로 했던 전통 철학의 전제를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상상과 이성, 허구와 사실, 환상과 실재 사이의 단절을 봉합선 없이 이어준다”는 사유로 전환시킨다. 진중권은 “이로써 가상과 현실사이에 묘한 존재론적 중첩의 상태가 발생한다”며 “그것을 우리는 ‘파타피직스’(pataphysics)라 부를 것”이라고 말한다. ‘파타피직스’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된 디지털 생활세계의 존재론적 특성이자, 동시에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디지털 대중의 인지적 특성이기도 하다”. 즉 진중권은 새로운 인식론과 존재론의 핵심 개념으로 ‘파타피직스’를 내세운 것이다. 

‘파타피직스’는 프랑스의 작가 알프레드 자리가 제안한 새로운 분과로 ‘형이상학’(메타피직스)을 패러디한 명칭이다. 진중권에 따르면 “일종의 사이비 과학, 더 정확히 말하면 고도로 지적인 농담으로서의 과학”을 가리킨다. 메타피직스를 파라피직스가 대체하듯, 메타포(비유)는 파타포(pataphor)에 자리를 내준다. 일례로 체스는 전쟁에 대한 비유(메타포)이지만, 주인공 일행들이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피겨들과 실제로 싸움을 벌이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한 장면은 ‘파타포’다. 메타포에선 가상과 실재가 분리되지만, 파타포에선 중첩된다. 진중권은 “(전통적으로)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메타포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파타포의 능력이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상력의 논리’다“라고 말한다.

진중권은 머리말에서 “그동안 다양한 주제로 많은 책을 썼지만 그것들 모두를 관통하는 사유 전체를 체계화하고자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은 결국 ‘디지털 혹은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다”라고 했다. 근대 및 현대철학의 사유와 개념들을 가지고 놀듯 요리하고, 전통적인 예술 작품과 사조에서 최근의 인터넷 유행과 사건들까지를 마음껏 건너 뛰어다니는, 명쾌하고 경쾌한, 디지털 시대의 젊은 미학자로서 진중권의 글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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