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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시민 안전 뒷전인 응암1구역 재건축 현장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서울에서 이렇게 황폐한 동네는 없을 겁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는 지금 참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멀쩡해보이는 주택 수백 채가 이미 흉가로 변했다. 깨진 유리창이 골목길을 뒤덮었고, 떨어진 문짝과 샷시는 거리를 나뒹군다. 집 내부에는 벽지가 아무렇게나 뜯어져있고, 깨진 조명 기구들은 삐걱삐걱 그네를 탄다. 마당에는 집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이런 흉가들 사이로 연결돼 있는 낡은 도시가스 배관을 보노라면 혹시 모를 폭발사고에 대한 공포감마저 밀려든다.

여기는 응암동 625-1번지 일대 부지면적 약 4만8000㎡의 응암1구역 재건축 현장이다. 현재 관리처분 변경인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6년 3월 재건축 구역으로 지정된 뒤 지금까지 8년여간 사업을 끌어왔다. 그동안 수 차례 조합을 설립하고 수 차례 조합설립인가를 변경했다. 시공사 선정 후 시공사와의 계약도 몇 번이나 변경했다. 그만큼 곡절이 많았다는 얘기다.

이제 관리처분인가 단계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단계만 넘으면 개발 사업의 9부 능선을 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다음 단계는 주민 이주와 건물 철거, 그 다음에는 멋들어진 아파트만 지으면 끝이다.

문제는 관리처분인가를 기다리는 이 시점에 이 지역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과연 이렇게 황폐한 마을에 사람이 살까 싶었다. 그런데 잠시 머물다 보니 70~80대 노구를 이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한때 1300여가구, 3500여명이 거주하던 마을이지만 개발이 진행되면서 현재 많아야 100여 가구가 남았다고 한다. 이들은 이미 개발 막바지에 이른 지금도 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수십년 정든 동네를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보상가도 이들을 잡아두고 있다. 한 할머니는 “내 집 시세의 60~70% 수준인 보상금을 가지고는 서울 아니라 경기도에서 살기도 힘들다”고 푸념했다.

이들은 요즘 하루하루가 지옥같다고 했다. 마을 전체가 흉가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 집은 누군가에 의해 처참한 몰골로 변하고 있다. 전봇대 주변에서 불이 나 마을 전체에 전기가 끊긴 적도 있다.

일각에선 조합과 시공사가 사업의 빠른 진행을 위해 과욕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리처분인가가 난 뒤 구청에 철거신고가 접수돼야 철거를 할 수 있는데 이미 부분적으로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현재 이 동네 골목길에는 깨진 유리 파편이 길을 덮을 정도로 방치돼 있어 걷다가 넘어지기만 해도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장에 있는 동안 내내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국가적으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곳만은 예외인 듯하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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