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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18세기 동아시아 문예공화국, 하버드에서 찾다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20세기 초의 일본 학자가 중국 청대의 학술을 연구하다가, 조선의 지식인에게 푹 빠졌다. 그가 중국과 조선에서 필생의 의욕을 쏟아 수집했던 자료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것이 곡절 끝에 다시 미국 대학의 도서관으로 흘러들어온 지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가에서 잠자던 책들이 서서히 깨어나, 기지개를 켜다 말고 ‘여기가 어디지?’하는 소리를 몰래 들었다. ”(정민,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중)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고서들의 ‘기침 소리’가 나즈막히 울렸던 곳은 하버드 옌칭 도서관이었으며,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 이는 한문학자 정민 교수(한양대 국문학)였다. 라틴어를 매개로 했던 유럽의 17~18세기처럼 비슷한 시기 공통 문어인 한문을 고리로 문예공화국이라 할 법한 지적 공동체를 이뤘던 동아시아. 그 궤적은 20세초 일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의 열정적인 수집과 독서로 이뤄진 거대 소장 도서와 메모로 남겨졌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경성제국대 교수였던 후지쓰카 지카시는 청조의 고증학단에 대해 연구하던 중 청조 지식인들과 교유했던 조선의 학자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는 청조의 학술과 문예가 어떻게 조선에 전해졌는지를 평생 연구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인 후지쓰카 아키나오는 전후 일본에서 생계를 위해 선친이 중국과 조선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수집한 책들을 적잖이 처분했고, 그 책들의 일부가 우여곡절 끝에 하버드 옌칭 도서관으로 흘러들어갔다. 이후 60여 년 동안 옌칭도서관 선본실 서가에 잠들어 있던 후지쓰카 지카시의 구장 도서를 깨워낸 이가 바로 한문학자 정민 교수다. 정민 교수는 지난 2012년 8월부터 1년간 하버드 옌칭연구소에 방문학자로 머무르며 ‘후지쓰카 컬렉션’을 발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교류사를 복원했다. 그것이 최근 출간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문학동네)이다.

이 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후지쓰카 지카시는 1921년부터 2년간 베이징 주재 해외 연구자로 파견 생활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현지의 서점에서 청대 원간본 수만권을 수집했다. 당시만 해도 후지쓰카는 조선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으나 베이징을 가는 길에 잠시 서울을 들러 경학원과 규장각 도서관, 총독부와 고서점 한남서림 등을 둘러본 후 조선을 청조학의 본질로 들어가는 우주정거장과 같은 위치로 규정했다는 것이 정민 교수의 전언이다. 1926년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후지쓰카가 1940년 정년퇴임 때까지 조선에서 수집한 자료는 서적만 수천권에 서간, 탁본은 천여점에 이른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시리즈의 6번째 책으로 나온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은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 조선의 지식인들이 중국의 학자들과 소통하며 대를 이어 문화와 학술교류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던 아름다운 광경들을 되살려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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