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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생e수첩> 도처에 널린 ‘세월호’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 “아프리카도 아니고...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세월호 쇼코’로 국민적인 힐링이 필요한 열흘 전 쯤, 본지 기획물 ‘휴먼다큐’ 인물로 긴급 선정돼 기자와 마주 앉게 됐던 스페인 출신 유의배 신부님이 혀를 끌끌 차면서 한 말입니다.

참고로, 유 신부님는 한국 땅을 밟은 지 올해로 38년, 적응기를 제외하고 34년째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는 성심원에서 한센병(나병)환우들과 형재·자매로 동고동락해오고 있는 푸른 눈의 천사(스페인 이름, 루이스 마리아 우리베·68)로 통하는 분입니다. 

그날, 유 신부님은 대한민국의 고질병 중 하나인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던 중이었습니다. “왜 남의 나라(일본)가 15년이나 써먹은 배를 우리가 사들여 왔는지, 그 것도 이리저리 고치고 붙이고 해 이런 난리를 치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어려울 때 일수록 국민 모두가 하나 돼 사랑을 믿고 사랑을 더 주고 좋은 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며 따듯한 위로의 말로 상처받은 대한민국을 어루만져 주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다시 유 신부님의 정성어린 따끔한 지적과 충고를 꺼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 널린 또 다른 ‘세월호’를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말처럼 아프리카에서도 보기 힘든 창피한 일들이 요 며칠 사이 하루 이틀이 멀다않고 툭툭 불거지고 있습니다.

14일 오전, 수원에 있는 원천 저수지에서 9만t의 물이 하천으로 쏟아져 내리는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인명을 포함해 별다른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다고 합니다. 평온하게 하천변 산책로를 타고 운동을 즐기던 이들이 혼비백산 피신하거나 더러는 긴급 구조되는 등 한 시간 이상 난리 아닌 난리를 쳤다는 겁니다.

사고 이유가 어이없습니다. 물을 가두는 보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콘크리트 보 상단에 설치한 고무 보의 일부에 공기가 빠져 물이 넘친 겁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인재입니다. 댐이나 저주지 둑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대형 참사는 불 보듯 아니 물 보듯 뻔합니다. 불은 흔적이라도 남기지만 물의 터도 남기지 않는 법입니다. 사고 인근은 하천을 따라 아파트가 다닥다닥 합니다. 주민들이 남녀노소 산책을 하고 놀이를 즐기는 곳입니다.

이 보다 앞서 며칠 전, 많은 이들이 두 눈을 의심했을 겁니다. 속보에 오른 황당한 사진하나.
충남 아산의 오피스텔 건물이 비딱하게 기운 모습 말입니다. 붕괴 직전까지 이르게 된 이 오피스텔 역시 조사해보니 명확한 인재의 모둠 메뉴였다고 합니다.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이 설계도보다 3분의 1가량 부족했고, 기초공사 역시 엉터리였는 데다 부실을 감독할 감리는 있으나 마나였으니 안 넘어가면 그게 더 이상하질 않습니까. 다행이 입주 전이어서 큰 사고는 면했지만 도대체 이게 21세기 첨단사회를 지향해 온 대한민국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요.

안된 말씀이지만 이게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수준입니다. 학교 건물 그리고 학교 주변은 안전 무방비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교실 벽은 물론이고 등굣길이 여기 쩍쩍 갈라져도 나몰라 행정입니다.

늘 싼 맛에 뚝딱 지어버리는 학교 건물,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진이라도 나면 일반 건물에 비해 5배 이상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우리의 미래가 부대끼며 온 종일 보내는 곳, 학교입니다. 예산타령을 앞세우지만 절대 다수 국민들은 유리지갑을 열어 내라는 세금을 꼬박꼬박 냈습니다. 그래서 더 억울하고 분한 겁니다.

하긴 엉터리 해경의 품에 안기는 한해 예산이 무려 1조원이지만 그 중 안전예산은 고작 167억 원이라고 합니다. 해경 특수구조단은 전용 헬기도 없는데 제주 해경청은 166억 원을 들여 신청사를 짓겠다고 한답니다. 더 한심한 것은 해상 안전과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해경의 고위직 절반이 배 탄 경험이 없는 이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왕좌왕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던 겁니다.

그러고 보니 ‘안전’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공기관들의 임원 절반이 정·관계 출신, 다시 말해 줄 타고 내려온 이들이랍니다. 유 신부가 말한 원시적이고 미개한 사건사고가 빈발한 이유를 알만합니다.

유 신부를 갑작스럽게 인터뷰하면서 그날 기자는 부끄러웠지만 속은 아주 시원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보다 더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을 사랑하는 외국인, 그 것도 수십 년 동안 이 나라의 산업화와 현대화를 지켜 본 유 신부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랬던 겁니다.

사실, 이런 최악의 국가적 재앙에서 한국인으로서 그 누가 있어 감히 국가적 국민적 방황을 지탱하고 혼란을 거둬들이겠습니다. 기자가 주관과 객관을 동시에 갖춘 유 신부를 급히 찾아 힐링을 구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임박한 모양입니다. 때가 때인지라 어떤 내용을 담아낼지 궁급합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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