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상황 열악...피부병 무좀약 수요도 급증
[헤럴드경제=이지웅ㆍ김현일ㆍ배두헌(진도) 기자]“처음 실종자 가족들은 청심원도 잘 안 먹으려고 했어요. 내가 어떻게 이걸 먹냐고, 마시다가 도로 뱉으시더라고요….”
지난 14일 오후 진도 팽목항의 ‘봉사약국’ 천막에서 만난 이경숙(61) 약사는 인터뷰 중간중간 울었다. 그는 실종자 가족들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청심원을 먹는 일조차 죄스럽게 여겼다고 했다. 자식이 차가운 물속에 갇혔는데 내 몸 위해 약 먹는 일은 사치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발생 직후 지원했던 청심원 7000개는 약 일주일 만에 동이 났다. 대한약사회 한 관계자는 “사고 초기 가족과 다른 인원들이 당시 받았을 충격과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신이 수습되면서 가족들은 청심원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직접 아이 얼굴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팽목항 봉사약국 천막. |
이경숙 약사는 “한 가족 분은 울다가 정신을 잃고 뒤로 넘어가서 저희가 억지로 입을 벌려 청심원을 넣어 드린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초반에 수습된 시신들은 깨끗하고 그냥 자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흐트러졌어요. 엄마들은 자식 예쁜 모습만 기억해야 하는데…”라고 눈물을 훔쳤다.
대한약사회가 지난달 18일부터 문을 연 봉사약국은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 각각 1개 씩 있다. 실종자 가족들이 찾는 의약품은 그들이 처한 정신적ㆍ신체적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사고 현장 상황과 자신의 상태에 따라 찾는 의약품도 각각 다르다.
지난 17일부터 진도에 상주하고 있는 최기영(56) 약사는 “팽목항의 경우 상황이 열악하다보니 피부병, 무좀약의 수요가 많다”고 했다. 요즘에는 파리, 모기까지 생기기 시작하면서 물파스도 많이 찾는다.
사고 발생 30일째, 오랫동안 지친 실종자 가족 대부분은 입 안이 다 헐었다. 밤낮 없이 차가운 팽목항 바닷바람을 마냥 맞고 온종일 자식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마스크나 인공눈물을 찾기도 한다.
다만 봉사약국에선 수면제는 놓아두지 않고 있다. 한 약사는 “잠이 안 온다는 가족들이 많지만 지금 상황에서 수면제는 다르게 사용돼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좀 약한 수면유도제를 갖다 놓는다”고 했다.
팽목항 봉사약국에선 약 30분간 20여명의 사람들이 약을 받아갔다. 침도 못 삼킬 정도로 편도가 부은 실종자 가족은 어지럼증을 느껴 다시 쌍화탕 한 병과 소염제를 들이켰다. 두통과 가려움증이 심하다는 자원봉사자 2명은 두통약과 연고를 받아들었다.
수색 작업을 하는 잠수사들 역시 물속에 들어가기 전 이곳 팽목항 약국에 들른다. 그들은 멀미약과 두통약을 챙겨 바지선에 오른다.
약사들은 12시간마다 교대 근무한다. 자정부터 정오까지, 다음 근무자는 정오부터 자정까지 일한다. 실내체육관 옆 컨테이너에서 눈을 붙인다. 전남지역 약사만으로는 일손이 달려 전국에서 약사들이 지원을 나오지만 여전히 사람은 부족하다.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이경숙 약사는 여력이 돼서 내려올 수 있는 게 오히려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이번 일이 너무 큰 일이니까 가족들도 이해해줘요. 세월호 안에서 찍은 동영상 속 목소리를 들으면 다 내 아들 목소리 같은데. 그거 보면서 너무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같이 내려온 다른 여(女)약사 분은 김치찌개 왕창 끓여놓고 왔대요. 본인 가족들도 있으니까…. 여약사들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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