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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년째 단종을 그려온 서용선 “역사를 통해 우리의 삶 돌아볼 필요있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이름없는 민초들이 남긴 옛 민화 속 붉고 푸른 원색으로 ‘도시’와 ‘역사’를 그려온 작가 서용선(63). 그가 또다시 단종을 테마로 한 역사화를 발표한다. 서용선은 지난 2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아트센터 화이트블럭(관장 이수문)에서 작품전을 개막했다.
전시 타이틀은 ‘역사적 상상-서용선의 단종실록’. 그간 수차례 단종을 주제로 한 전시를 가져온 작가는 이번에 단종과 수양(세조), 단종의 유배와 죽음을 지켜본 정순왕후, 매월당 김시습을 그린 강렬하면서도 서늘한 신작을 내걸었다.

서용선은 조선의 가장 비극적인 국왕인 단종(1441~1457)을 28년째 화폭에 풀어내왔다. 마치 학자처럼 단종 관련서적과 논문을 탐독하고, 관련지역을 답사하며 역사화 작업을 거듭 중이다. 일각에선 숨가쁜 디지털시대에 ‘케케묵은 역사’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것 아니냐며 반문한다.

그는 “물론 단종 작업은 제 작업의 한 부분입니다. 도시도 그리고, 사람과 풍경도 그리지요.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역사화 작업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서양미술은 역사와 신화를 토대로 튼실하면서도 도전적인 길을 걸어왔는데 우리는 ‘자연친화’, ‘관조(觀照)’에 머무는 게 늘 아쉬웠습니다. 우리 그림의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역사를 담게 됐지요”라고 했다.


사진설명=서용선 처형장 가는 길,750x480cm, Acrylic on Canvas, 2014 [사진제공=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서용선 무량사,60.5x72.5cm,Acrylic on Canvas, 2014 [사진제공=아트센터 화이트블럭]

그가 단종에 주목하게 된 것은 ‘서울을 잠시 잊고 싶어’ 떠난 여행 때문이었다. 1986년 여름, 서용선은 강원도 영월을 찾았다. 그곳에서 친구로부터 청령포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단종이 유배됐던 장소이자, 숙부(세조)에 의해 죽음을 맞은 단종의 시신이 지방관리 엄흥도에 의해 수습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자료를 찾아 읽었다. 또 역사적 흔적이 남은 지역을 누볐다. 즉흥적 영감에 의존하기 보다, 역사와 정치,철학을 넘나들며 단종이란 주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풀어나가고 싶었던 것. 그 결과 계유정난, 단종복위운동 등 수많은 사건과 인물을 그린 작품이 잇따라 탄생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종의 셋째아들이자, 수양대군의 동생인 안평대군에 초점을 맞춘 신작과 역사적 장소를 그린 ‘역사풍경화’를 선보인다.

그는 역사를 그대로 그리진 않는다.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는 것도 피한다. 역사를 지속적으로 사유하고, 숙고하는 동시에 현재의 우리 모습과 우리 사회를 직시해 오늘의 조형언어로 길어내는데 힘을 쏟는다. 역사에 뿌리를 두되, 그만의 상상력으로 이를 표현하는 것.

처형장에 끌려가는 사육신과 이들의 시신을 거둔 김시습,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과 정순왕후, 단종이 유배갔던 영월 풍경 등 전혀 다른 시공간이 한 화면에 조합된 작업이 그 예다. 서용선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기 위해 화면을 가로지르며 휘어져 흐르는 강물 줄기를 대담하게 드러내거나, 자유로운 면분할을 시도한다. 김시습이 단종의 영혼을 위해 제를 지냈다는 동학사 경내의 숙모전, 단종 복위에 실패하고 숨진 이들의 영혼을 위무하기 위해 ‘경(敬)자‘를 새겨넣은 바위를 그린 풍경화 등은 우리 역사 속 비극적 한 시대를 환기시키고 있는 또다른 역사풍경화다.

작가는 “감상과 슬픔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우리 내부에 권력에 대한 욕망이 내재된 것은 아닐지, 습관이나 이념을 무조건 따르는 건 아닌지 돌아보려 했다. 우리 삶을 점검해볼 때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용선은 2008년 서울대 교수직을 버리고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곤 작업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작가는 그동안의 답사과정을 담은 영상물과 그동안 모은 관련자료와 서적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서용선 송씨 부인, 181.5x227cm,Acrylic on Canvas, 2014 [사진제공=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이번 전시는 갤러리에서 미술관(아트센터)으로 새 출발하는 화이트블럭의 첫 발걸음이기도 하다. 이수문 관장은 “지난 3년간 각종 전시와 레지던시 운영 등을 통해 파주지역에 미술문화를 꽃피우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는데, 현대미술의 공공적 가치를 실현키 위해 사립미술관으로 재개관한다”며 “앞으로 현대미술이 다양한 면모를 선보이는 열린 공간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연초마다 갤러리 수입과 지출목표를 세웠고, 그동안 지출은 매년 초과달성(?)했었다. 한가지라도 목표를 달성했으니 다행이다. 이제 미술관으로 노선을 바꿨으니 지출폭이 더 커질 테지만 파주 헤이리에 이런 문화예술공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이들이 찾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시에 즈음해 서용선이 미술을 공부하던 시기의 드로잉 작품을 중심으로 작업세계를 둘러본 ‘기억하는 드로잉: 서용선 1965∼1982’(집필 서울대 김형숙교수, 교육과학사 펴냄)도 출간됐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031-992-440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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